김시욱 에녹 원장

대통령 선거를 6개월 정도 남겨둔 시점이다. 연일 방송과 신문 그리고 사회관계망을 통한 정치적 이슈들이 넘쳐나고 있다. 여야와 소수정당의 대통령 선거 예비 경선이 시작되면서 후보들의 모습이 가시화되고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을 시작으로 국민 참여 본선 후보 투표가 지난주부터 시작됐다. 그 기간 후보 간의 도덕성 논쟁과 비방은 끊이지 않았다. 국민의힘 역시 예비 후보들의 상호 공격과 비방으로 뜨거운 한 주가 되고 있다. 예비 경선을 통한 검증과 본선에서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취지와는 달리 여야 모두 예비 경선과 본 경선에 들어가면서 ‘이기는 자만이 승자’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듯하다. 언제부터 우리 정치에 ‘승자독식’의 논리만 자리하게 됐는가?

최근 US오픈 테니스 결승전의 뒷모습이 조명됐다. 세계 1위의 노박 조코비치를 물리치고 우승한 다닐 메드베데프의 인터뷰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으로 남았다. 그는 ‘팬 여러분과 조코비치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우리 모두 조코비치가 오늘 어떤 기록을 앞두고 있었는지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코비치가 이겼더라면 52년 만에 한 해 4대 메이저를 휩쓰는 ‘캘린더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다. 더불어 남자 단식 최초의 메이저 대회 21회 우승이라는 기록도 세울 수 있었다. 대기록을 가로막게 돼 유감이라는 메드베데프의 승자다운 사과이자 패자에 대한 위로였다. 사각의 코트와 엄격한 룰 속에서 이뤄지는 필연적 승패의 순간이었지만 선수와 관중 모두가 기쁨을 누리는 자리로 만들었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자 축제라 부른다.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자 국가의 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투표의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여론이 결집돼 투표 결과로 나타나고 선거로 뽑힌 대표자는 국정에 국민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노력하는 정치 메카니즘이기에 꽃이자 축제로 불리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의 현실은 꽃이 아닌 악취의 수렁에 빠진 듯하다. 후보 검증이라는 명분하에 연좌제식 부동산 비리 폭로로 국민의힘 윤희숙 예비후보의 후보직 사퇴와 국회의원 사직이 이뤄졌다. 국민권익위원회의 부동산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한 자진 사퇴였지만 반대진영의 네거티브 전략에 당하지 않으려는 ‘희생양’을 자처한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정치적 쇼’라며 비판하던 민주당이 뒤늦게 개별 의원 자율투표에 맡겨 처리한 것이 그 방증이다. 국민의힘보다 앞서 12명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된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건재와 복당 과정을 보노라면 차라리 ‘짠’한 마음이 앞선다.

게임 이론으로 등장한 ‘제로섬 게임’이라는 용어가 있다. 게임에 참가한 양측 중 승자가 얻는 이득과 패자가 잃는 손실의 총합이 제로가 되는 게임을 가리킨다. 승자가 얻는 만큼 패자가 잃는 ‘승자 독식’의 게임인 까닭으로 치열한 대립과 경쟁을 불러일으킨다. 정치라는 무한 경쟁의 분야에서도 이것은 통용되고 있다. 다수결의 원리 속에서 다수표를 획득한 승자는 절대강자로서 모든 이득을 독식한다. 선거구당 1명을 선출하는 국회의원 소선거구제와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과 헌법 개정이라는 여론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승자독식 구조의 선거제도 속에서 근거 없는 마타도어(흑색선전)와 상대방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 어떤 재판보다도 뒤늦은 판결로 이어지는 선거재판의 관례를 보노라면 ‘아니면 말고’식의 의혹 제기는 한국 정치의 주된 특징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실체적 진실은 절대강자인 승자에 의해 희석되고 묻혀 진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승자독식의 제로섬 게임은 한국 정치사의 수치로 남았다는 점이다. 전직 대통령 두 분이 죄수복을 입고 있으며 진영 간의 극한 대립 속에서 너무 쉽게 퇴임 후 전임 대통령에 대한 구속을 내뱉고 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한국 정치의 현주소가 아닐 수 없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비난을 위한 대립이 아니라 상생의 협력을 통해 양측 모두 그리고 모든 국민이 이득이 될 수 있는 ‘논 제로섬 게임(non-zero sum game)’의 선거가 돼야 한다.

김시욱 〈에녹 원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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