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육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자

발행일 2021-09-15 14:08: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월 300만 원 이상 받는 대기업 취업자의 66%는 이과 출신이다. 33%만이 문과 관련 전공자다. 문과 취업자 중 다수는 서울 상위권 대학 졸업생이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인구론(인문계 졸업생의 90%가 논다)’이라는 말은 이미 올드 버전이다. 요즘은 같은 문과 안에서도 ‘협문’과 ‘광문’으로 나눈다고 한다. 협문은 ‘협의의 문과’로 문·사·철·정외 등 전통적인 인문·사회계열 학과를 조롱하는 말이다. 광문은 ‘광의의 문과’로 경영·경제 등 상경계열 학과를 일컫는다. 취업이 안 되다 보니 문과 안에서도 비뚤어진 자부심과 취업률로 내부 총질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상경계열 출신의 취업이 쉬운 것도 아니다. 대학가의 절박한 실상과는 달리 바깥 사회에서는 협문 중심의 인문학 열풍이 여전하다. “인문학은 밥걱정이 없는 기득권자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사치입니다”라고 말하는 어느 사학과 학생의 절규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2022학년도 수시 원서 접수 결과 수도권 대학들은 줄어든 수시모집 정원과 명문대를 가야 취업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 등의 영향으로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는 경쟁률이 지난해보다 올랐다. 대구·경북지역도 약대 신입생을 뽑는 일부 대학은 경쟁률이 올랐다. 몇 개 대학은 지난해보다 경쟁률이 떨어졌다. 수시는 여섯 군데 원서를 낼 수 있기 때문에 경쟁률이 6대1이 안 되면 정원 확보를 낙관할 수 없다. 지역 일부 대학은 수시·정시를 다 거쳐도 모집정원을 채우기가 어려울 것이다. 취업난과 대학의 생존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다 보니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기업체는 지원자는 많지만 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말한다. 세상은 무섭게 변하고 있는데 교육 현장은 변화에 부응하는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

9월3일 마감한 2022학년도 수능 원서 접수 결과를 분석해보면 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사회, 과학에서 특정 과목 쏠림 현상이 심각한 상태다. 사회 9개 과목 중 상대적으로 쉽다고 생각하는 ‘생활과 윤리’는 문과 수험생의 32.49%가 선택했고, ‘사회문화’는 30.6%가 선택했다. 반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제는 선택자가 1.39%밖에 안 된다. ‘정치와 법’은 6.31%, 세계사는 4.27%만 선택했다. 눈만 뜨면 온종일 경제·정치·법과 관련된 문제를 접해야 하고, 세계화와 국경 없는 기업 활동을 이야기하면서도 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과목들은 외면 받고 있다. 과거에는 경제·정치·법은 ‘일반사회’ 속에 다 들어있었고, 세계사도 필수 과목이었다. 자연계도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상대적으로 쉽다고 생각하는 생명과학Ⅰ은 30%, 지구과학Ⅰ은 30.28%의 수험생이 선택했다. 물리학Ⅰ은 선택자가 13.90%, 화학Ⅰ은 16.25%였다. 서울대와 카이스트만 과학Ⅱ를 요구하기 때문에 물리학Ⅱ는 0.75%, 화학Ⅱ는 0.81%만 선택했다. 의대 지망생 상당수가 지구과학을 선택하고, 공대 지망생 절대다수가 물리를 선택하지 않는다. 정치·경제·법을 배우지 않으니 세상사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물리·화학을 배우지 않은 학생이 많으니 이공계 학생과 교수가 얼마나 힘들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국어시험을 칠 때, 인문·사회학 관련 지문이 나오면 이과 학생은 독해가 어렵고, 자연과학 지문이 나오면 문과 학생은 이해하기 어렵다. 정치, 경제, 법, 물리학 관련 지문이 나오면 계열과 관계없이 모두가 어려워한다. 이게 우리 교육 현실이다. 초중고·대학의 교육과정 개혁을 위한 중립적인 기구를 만들어 국가의 백년대계, 아니 최소한 십년대계는 논해야 한다. 문과 학생은 정치·경제·법 등을 필수로 이수하게 해야 하고, 이과 학생은 물리·화학을 필수로 선택하게 해야 한다. 지금은 장르 간 벽허물기, 서로 다른 영역과의 통섭이 요구되는 시대다. 인문계 학과 지망생은 ‘공통과학’, 자연계 학과 지망생은 ‘공통사회’를 반드시 이수하게 하고 수능시험 과목에도 포함해야 한다. 수험생 부담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내용은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취업과 대학의 생존뿐만 아니라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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