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최근 흉악 잔혹 범죄가 이어지면서 사형집행이 재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급기야 사형제 존치 문제가 유력한 대선주자들 간의 이슈로 떠오르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사형제의 기원은 함무라비 법전이다. 동태복수(同態復讐: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사고가 그 바탕이다. 구약성서, 코란, 고조선의 8조 법금에도 사형제가 나타난다. 범죄 예방과 질서 유지를 위한 강력한 도구로 기능했다. 지금도 사형제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 사형제가 정의를 지켜주는 정당한 제도라 생각하는 증좌일 터다. 사형제 폐지가 공론화 된 건 20세기 들어 ‘스톡홀롬 선언’을 통해서다.

생명 존엄과 인권 존중, 오판 가능성 그리고 범죄 억지력 의심 등이 사형제 폐지의 논거로 거론된다. 여기에 형벌의 목적이 징벌보다 교화에 방점이 찍히면서 사형제 폐지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허나 생명과 인권의 존중은 피해자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는 점, 오판 가능성은 판결의 문제일 뿐 사형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점, 범죄 억지력이 의심스럽다는 것은 확증이 부족하고 자의적이라는 점 등이 그러한 논거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여론이 사형제 찬성 쪽으로 기우는 걸 보면 사형제 폐지는 대세라기 보단 지식인의 ‘현학적 성’ 정도로 의심할 소지가 있다.

형벌은 범죄를 억지하고 악인을 격리·교화하는 목적도 있지만 피해자 등의 복수를 공권력이 대신해줌으로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원시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피해자 등은 원한과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사형과 같은 살풀이가 속 시원한 자력구제에는 못 미치겠지만 그러한 트라우마 치유에 도움을 줄 것이다. 아울러 범죄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권선징악을 화끈하게 시현함으로써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형제를 법학적 측면에서만 바라봐선 안 된다. 범죄에 대한 불특정다수인의 감정을 정화시켜주는 사회적 기능을 생각해야 한다.

가해자에게 보복하고 싶은 마음을 만족시켜주려면 최소한 똑같은 정도 이상의 징벌을 가할 필요가 있다. 사람을 죽인 경우 그 피맺힌 억울함을 풀어줄 방법은 없을 지라도 최소한 살인자의 생명을 박탈하는 형벌이라도 부과해야 그나마 직성이 풀린다. 잔혹한 살인에 대해 사형을 기본으로 적용하고 다수 사망자를 초래한 범죄로 그 대상을 확장하는 식으로 사형제를 운용한다면 그 부정적 폐해를 막을 수 있다. 인권근본주의만 고집하다보면 자칫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소극적 논리에 갇힐 위험이 크다.

인간 본성은 선악이 공존하고 개개인에 대한 선악 구성비율은 유전적 요인에 좌우된다. 교화에 현실적 한계가 엄존한다는 말이다. 또 참회한다고 용서한다는 것은 종교적 입장일 뿐 사법의 영역은 아니다. 정신작용인 참회의 진정성 여부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교도소에서 범죄를 학습해 더욱 흉포화 되는 현실은 교화 중심 행형추세를 되짚어봐야 한다는 신호다. 사형수보다 희생당한 사망자가 더 많다. 사망자의 인성과 공헌도, 범죄억제 효과 및 정의실현 등을 감안 한다면 사형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란 공리주의 명제에 부합하는 방법이다. 살인자를 사형에 처하는 선택이 사람을 덜 죽이는 인도적 방책인 셈이다.

사형 대체 형벌로 ‘감형 없는 종신형’이 거론되고 있으나 이는 잔혹한 흉악범에게 피난처를 제공할 뿐이다. 밖에서 감방 생활보다 더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자를 안전하게 보살펴주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흉악법이 세금으로 부양되고 있다는 사실에 격분할 사람이 많을 터다. 그 수가 적고 예산이 많이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혈세로 재워주고 먹여준다는 점에 흥분한다. 반인륜적이거나 흉악한 살인자는 교도하는 것보다 그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 국민정서에 맞는다.

혹자는 살인할 권리가 있느냐고 묻는다. 범죄를 행할 권리가 있어서 죄를 범하는 자는 없다. 전쟁에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것은 무슨 권리에 근거하느냐고 되묻고 싶다. 사형제 폐지보다 미리 예방하는 일이 우선이다. 인내하고 배려하도록 교육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형조건을 엄격히 하는 등 법제를 정비하고 판례를 통해 조정해가는 것이 그 다음이다. 사형제는 필요악이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