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영광만 되뇌면 꼰대일 수밖에 없다

발행일 2021-09-14 09:23:5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앞으로 4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낸다면 인생낭비 아니겠어요? 열심히 배워서 앞으로의 계획인 관광농원을 운영할 때 체험프로그램과 접목해 보려고 합니다.”

30대 아니면 40대 평범한 사람들의 장래희망처럼 보이지만 전혀 아니다. 지난 8월 중순 경북 성주군농업기술센터에서 군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수제맥주 양조 아카데미 2기 첫 시간에 나온 1942년생 80세 할아버지의 자기소개이다. 아니다. 할아버지라고 하기엔 너무 생각이 젊으신 분이다. 80세 아저씨라고 표현하는 게 딱 맞을 듯하다.

여든 살. 사람에 따라선 이 나이면 삶을 마무리할 즈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니면, 조금 더 편안하게 여생을 즐길 때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아무리 평균연령이 늘어났다지만 여든 살이라면 누구라도 노인이라 할 만큼 적지 않은 나이다. 그렇지만 여든의 연세에도 왕성한 활동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분들이 많음을 최근에야 실감을 했다.

성주군에선 수강생들의 주된 직업이 농업이라는 특성상 정년이 없는 영향도 있겠지만 도시 지역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수강생들의 다양한 연령대였다. 20대와 30대 청년 농업인들도 있었지만 특히 성주군에선 어르신들의 수강이 많았다. 70대와 80대 안팎인 이들 어르신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열정적이고 활동적이면서 모범생이라는 점이다.

수제맥주 아카데미의 특성상 1회 교육시간은 4시간~5시간 연속으로 진행된다. 게다가 1주일에 2회씩 총11회의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이들 어르신들은 결석이나 지각 한 번 없이 참여하신다는 것도 놀라울 따름이다.

‘신노인(新老人)’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다. 2018년부터 ‘신노인교실’ 또는 ‘신노인포럼’이란 제목으로 관련 강좌를 진행해오고 있는 김상진 대구수성구립용학도서관장은 신노인을 ‘새로운 노인’을 뜻하는 말이라고 했다. 기존의 가치와 사고를 고집하기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해 사회적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노인이라고도 했다.

신노인의 모습은 최근 TV프로그램을 통해서도 확인했다. 지난 12일 방영된 MBC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을 보면서다. 이날 2연승에 도전하는 가왕 ‘빈대떡신사’는 이광조의 ‘사랑을 잃어버린 나’를 아주 농익은 감성 보이스로 무대를 압도했다. 고음도 시원하게 뿜어내는 가창력에다 여유있는 카리스마도 돋보였다.

누구인지 너무 궁금한 나머지 인터넷을 뒤졌다. 네티즌들은 빈대떡신사의 정체를 가수 쟈니리로 추측하고 있었다. 1959년 데뷔한 쟈니리는 1938년생으로 올해 여든넷이다. 비록 가면 속에 감춰져 있어도 어느 정도 연륜이 있는 가수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여든넷의 쟈니리로 보인다는 소식에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이를 잊고 끊임없이 연습을 하지 않고서야 저런 감성과 또 고음을 무리 없이 뽑아낼 수는 없을 터다.

성주군의 수제맥주 수강생 사례나 가왕 ‘빈대떡신사’의 주인공인 쟈니리는 신노인의 자세인 시니던트(Senident. Senior+Student)와도 딱 맞는 사례다. 김 관장은 대구일보에 쓴 칼럼을 통해 김상태 전 구미1대학 교수의 ‘화양연화의 길’이란 책을 인용하면서 ‘신노인’의 바람직한 자세로 시니던트를 제안했다. 늙어서 계속 공부하는 것이 육체적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 못지않게 질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변하는 세상 공부하기의 첫걸음은 세상의 변화에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흔히 요즘 우리 사회에 어른이 실종됐다는 말을 많이 한다. 아마도 지금 20, 30대들이 바라보는 어른의 모습은 보수와 진보 극단의 양 진영으로 갈라서서 이념논쟁만 벌이는 것일 수도 있다. 자기들이 누리는 것이 원칙을 저버린 특혜인지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특권의식에 젖어있기도 한 모습이다. 이런 어른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길은 평생을 바쳐온 자기 분야에서 끝까지 프로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으니 보호 받아야 한다는 수동적인 자세를 바꾸는 것이 ‘신노인’의 바람직한 자세다. 과거의 영광만 되뇌고 있으면 꼰대로 남을 수밖에 없다.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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