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의료법과 정책인가?

발행일 2021-09-15 14:07:49 댓글 1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정홍수 대구시의사회장

현재 의료계는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19와의 전쟁에 총력을 다해도 힘겨운 판국에, 인기 영합적인 의료 악법들까지 쏟아지니 이래저래 진료실 안팎의 시름이 깊다.

얼마 전 국회를 통과한 ‘CCTV 법’(수술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은 세계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법이다. 의료 사고와 인권에 민감한 미국 같은 의료 선진국들도 해내지 못한 쾌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황당하기까지하다. 이 법은 아무리 따져봐도 득보다 실이 많은 악법이 분명하다. 문제점을 열거하자면 하나둘이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의사를 감시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 제일 큰 문제이다. 의사를 믿고 신뢰해 자신의 몸을 맡길 전문가가 아닌, 카메라로 감시해야 할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는 점에서 의사들의 사기는 말이 아니다. 의사를 믿지 못해 CCTV를 꼭 달아야겠다면, 모든 직장에 CCTV를 달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학교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 교실과 학교 구석구석에 CCTV를 달고, 직장내 갑질, 성희롱, 태움 등도 전부 CCTV를 달아서 해결하면 될 것이다. 학교 폭력, 왕따, 범죄율 모두 감소할 것이니 드디어 대한민국 만세인가?

CCTV법이 시행되면 지금도 지원 기피과인 외과 계열의 의사 지원은 더더욱 줄게 될 것이고, 위험한 수술을 기피하고 소극적인 치료를 하는 경향이 뚜렷해져 간단한 수술도 가까운 곳에서 빨리 받지 못하는 날이 곧 올 것이다. 또한 수술 시 불가피하게 노출된 신체 특정 부위가 담긴 영상이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방어벽을 설치해둔 정부 기관도 해킹되는 현실에서, 보안이 취약한 의료기관에서의 자료 유출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대리수술, 분명히 잘못이다, 아니 현행법을 어긴 파렴치한 범죄행위다. 그러나 탐욕에 눈이 멀어 의료윤리를 저버린 몇몇 파렴치한 의사들 때문에, 13만 의사 모두를 범죄자 취급해 의사와 환자의 신뢰를 깨뜨리는 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어리석은 우(愚)에 다름 아니다.

이외에도 단순 과실(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등)을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의료인 면허관련법, 간호사의 의료행위가 가능해질 수 있고 직역 간 갈등을 유발하는 전문 간호사 제도법, 혈세 낭비와 지역의료체계를 붕괴시킬 공공의료 정책 등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법이 가져올 엄청난 부작용들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해보자는 의료계 의견을 무시한 채 의료법 제정과 정책·제도 시행이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19에 전력을 다해야 할 이 중요한 시기에 공청회까지 열어가면서 우리의 미래 의료환경을 걱정해야 하는 의료계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민들께 호소합니다. 이 법안들은 분명히 잘못된 악법입니다. 이런 잘못된 악법이 입법되고 시행돼 시민의 건강을 해치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시민 모두가 관심 가지고, 힘을 보태 주십시오. 대구시 6천여 명의 의사들을 대표해 시민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정홍수 대구시의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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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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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ni*****2021-09-23 13:32:00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매우 적절한 비유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