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오는 길/ 이병훈

발행일 2021-09-13 15:05:4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쓸쓸한 창가 환하게 빛날 때/ 어머니는/ 세상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구둣발을/ 기다린다// 찌개 냄새가 희미해진 골목/ 소리 없이 흔들리는 걸음/ 그 끝에 서 있는/ 환한 어머니//초라한 밥상 위로/ 거북등 손이 바쁘다

「달성문학」(달성문인협회, 2019)

갓난애가 가장 먼저 배워서 내뱉는 말은 엄마다. 엄마는 인류 최초의 언어일 것이다. 마마, 맘, 맘마. 마망 등 엄마를 의미하는 말은 어느 나라말이든 발음이 닮았다. 방어능력이 없는 미성숙 개체를 지켜주는 수호천사를 부르는 말이기도 하려니와 입으로 들어가서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물질을 총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가장 소중한 두 가지를 엄마라는 말에 담아낸다. 두 생명 줄을 중의적으로 포괄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엄마나 맘마가 자신의 생명처럼 소중하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을 터다. 그런 점에서 ‘어머니’는 원초적이고 다의적인 엄마가 가진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힘들고 마음의 경계를 순식간에 무장해제하는 신비로운 힘을 기대하기에도 다소 무리다.

엄마가 있어야만 집은 비로소 제대로 된 가정이 된다. 엄마가 없는 가정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엄마는 집의 정신적 구심점이자 가족의 신주단지다. 엄마의 가슴은 부드럽고 강하다. 그래서 집은 편안하고 평화롭다. 엄마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 영원하고 유일한 내 편이다. 세상이 다 등을 돌려도 엄마는 요지부동 변치 않는다. 엄마는 믿음이다. 그 믿음을 저버린 적이 없었기에 엄마 품에서 안심하고 편히 잠들 수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지만 그 유일한 예외는 엄마다. 대가를 치르지 않는 희생적 창조자다. 이를테면 엄마는 절대 신앙인 셈이다.

가족을 위해 조건 없이 묵묵히 희생하는 엄마는 아가페의 전형으로 가슴에 기억된다. 엄마는 뜨거운 듯 아늑하고 부드러운 듯 강인하다. 감미로운가 하면 든든하다. 놀랍거나 절망적일 때 무의식적으로 ‘엄마야’를 부르는 까닭이다. 엄마의 가슴은 고난과 역경을 품어 희망과 환희로 바꿔주는 마법의 하트다. 엄마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완전한 미학의 맑은 엑기스다. 나이 들어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형이상학적 존재이자 고차원적 철학이다.

길고 복잡한 사연은 시인에겐 군더더기다. 해가 지고 등불이 켜지면 창문이 환해진다. 산소 같은 기다림이 불빛에 은은하게 어린다. 비추는 등불이 도리어 쑥스럽다. 거듭되는 한결같은 일과지만 오히려 신선하다. 세상이 아무리 하수상해도 엄마는 일편단심으로 여전히 변함없다. 저녁밥을 지을 땐 찌개냄새가 진동했건만 기다림이 깊어지면서 그 냄새가 희석돼 공중으로 흩어진다. 엄마의 내음은 오히려 진하게 남아 빈 골목을 맴돈다. 그 내음은 발길을 이끄는 내비게이션이고 사랑을 부르는 페르몬이다.

마침내 발자국 소리가 엄마의 레이더에 잡힌다. 주름 잡힌 얼굴에 화색이 돌고 거친 손이 분주해진다. 갈라진 손등이 쓰려도 오불관언, 엄마가 내온 밥상은 어쩌면 초라할 수 있지만 따스한 손길이 있기에 진수성찬 왕의 밥상이 부럽지 않다. 엄마의 눈길은 빛이다. 그것은 삶의 근원이고 자양분이다. 엄마는 또 고향이다. 엄마에겐 고향 냄새가 난다. 집으로 오는 길이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엄마는 어디서든 존재하고 무엇이든 가능하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엄마가 존재한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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