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하늘에 가을이 온통 들어차 있다. 새털구름이 여유롭게 떠 있는 하늘에서도 구름이 가을~! 이라며 흐르는 것 같다. 나지막한 침대에 걸터앉아 창 너머 구름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길에도 가을이 머물고 있다. 멍하니 넋을 놓고 바라보는 저 순간이 어쩌면 진정 힐링 순간이 아니겠는가. 나도 덩달아 창밖 풍경 감상에 동참한다.

출입구에 ‘웰컴매트’를 깔았다. 한때 중국어 선생님이었던 분께서 며칠 전 소식을 전해왔다. 거리를 지나다가 나의 이름을 발견했다면서. 언제나 하이 톤으로 웃음 머금고 인사하며 아침 공부를 시작하던 그 선생님, 중국어 중에서 ‘환잉’을 제일 먼저 가르쳐줬다. 누군가를 햇살처럼 반기는 것을 뜻한다고. 자신의 공간을 방문하는 손님을 빛으로 여기고 ‘여기 우리 집에 당신이라는 빛이 들어와 환히 밝아졌네요’라는 뜻이라고 했다. 아침이면 어디선가 귀에 익은 음성의 “환잉~ 정밍씨~!”라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다.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니 반가운 인연들이 찾아온다. 십 여 년 전 중학생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왔던 여인은 어느새 손자를 봤다고 한다. 까까머리 아이가 자라서 결혼했고, 그 사이에 아이를 낳았다면서 며느리와 함께 귀여운 아이의 손을 잡고 병원에 찾아왔다. “속을 끓게 하던 00이 애가 바로 얘”라면서 잘 봐 달라고 한다. 대를 이어 찾아오는 이들을 어찌 잘 돌보지 않으랴. 무심코 올려다본 건물에서 내 이름 석 자를 발견하고 기억을 휘리릭 되감아 봤다는 아이 할머니처럼 긴가민가한 느낌에 소식을 알고자 확인차 방문하는 이, 인근 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가 개원 소식을 듣고서 부랴부랴 올라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사람, 카페에서 댓글을 보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처음으로 찾아왔다는 낯선 이들까지 하루하루가 신선하고 귀한 인연으로 엮어진다.

날마다 부대끼며 살아가더라도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해 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아이 둘 셋 기르는 이들도 요즘은 드문 것 같다. 형제자매가 있는가 물으면 하나 뿐이라는 이들이 많다. 아이에게 “동생 있으면 좋지 않겠니”라고 질문하면 곧장 “아니오~!” 라는 대답이다. 이유는 ‘경쟁하기 싫어서’라고. 예전의 우리처럼 여럿이 싸우면서 화해하고 어울려 같이 놀지 않는다고 한다.

밖으로 나다니지 않고 혼자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 아이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게임 하는 시간이 더 늘어나고 TV 보는 시간이 지나친 아이들도 많다. 밖에서 뛰놀며 땀 흘리는 활동은 더 줄어들고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채우는 경우도 많다. 인스턴트 음식에 야식에 늦게 잠자리에 드는 아이들, 몸무게가 자꾸 불어나 걱정이라며 병원에 온다. 비만이 성조숙증으로 이어질까 봐서. 사춘기가 일찍 시작돼 키가 덜 자랄까 걱정이라서. 초경이라도 덜컥 시작할까봐서 걱정하는 부모들이 늘어간다. 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과도한 걱정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게 도와줄 수만 있다면 아이들도 어른도 더 편하게 생활하지 않으랴. 그것이 바로 나의 임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반복되는 질문에 성의 있는 답변을 준비하리라 마음먹는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운동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스모비 운동기구를 준비했다. 미세진동을 이용해 온몸의 기능을 깨워주는 도구다. 스모비 내의 구슬 움직임은 미세진동을 발생시켜 칼로리 소비를 높인다. 전신근육을 자극해 근기능이 떨어진 부분까지 활성화시킨다. 빨강 녹색 파랑의 세가지 색깔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다. 빨간색은 인간의 운동능력과 투쟁심을 높이고, 녹색은 마음의 안정을 주고, 파랑은 머리를 맑게 해주리라. 양손에 스모비를 쥐고 진동을 느끼면서 스쿼트 자세를 취해본다. 앞뒤로 흔들며 점프 스쿼트,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동시에 다시 스모비를 앞뒤로 흔들어본다. 다시 스쿼트를 반복해 하다보면 체중 관리, 비만 예방, 성조숙증에도 도움 되지 않겠는가라고 희망한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소하지 않던가. 존재 그 자체로 기쁨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것이 소중한 행복이 되는 것이리니.

오늘도 기분 좋은 공간에서 쾌적한 인간관계를 맺고, 다가드는 가을을 평온한 마음으로 맞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행복이란 단어가 늘 맴돌 수 있기를.

정명희 〈정명희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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