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 지나 언덕길 지나/ 숨 가파올 때쯤/ 극락암 큰스님 친견하러 가던 날/ 뜨락의 꽃들도 화들짝 깨어나/ 엿듣고 있었지/ 이 소리 잡으라/ 아기 손 같은 내 손 꼬옥 잡으시고/ 손바닥 내리치시는데/ 천둥번개가 쳤다/ 무엇을 잡을 건지 무엇이 버릴 건지/ 무얼 잡으라 하시는지// 산그늘이 슬슬 깔리기 시작하면서/ 개울 저 편 먼발치에서는/ 누가 돌멩이를 던지고 있다

「오늘의 가사문학」 (열린시학사, 2021 여름호)

화두는 불교에서 선을 수행할 때에 탐구하는 과제다. 알아듣기 어렵거나 이해하기 힘든 선문답 속에서 시현된다. 일체의 망상을 끊고 화두로 가득 차게 만들어 마침내 그 의심을 해결하고 고요한 심성을 얻는 수행방법이다. 번뇌 망상과 분별적인 의식으로부터 벗어나 진리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수단이다. 보통 이슈나 현안, 쟁점 정도의 의미로 널리 쓰인다.

화두는 추론이나 일상적 사고의 패턴을 벗어난 초월적 자세를 요한다. 논리적 접근과는 거리가 있다. 불안, 번민, 고뇌 등 정신적 갈등과 생활의 잡념을 버리고 주어진 화두에 집중해야 깨달음을 얻는다. 그런 점에서 요즘 유행하는 ‘멍 때리기’와는 비슷하지만 지혜의 깊이와 폭을 넓히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스트레스 힐링 목적의 멍 때리기완 결이 조금 다르다. 화두는 책을 읽거나 남의 말을 들어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언어를 넘어선다.

화두는 간절함이 해법의 키이다. 어린애가 엄마 젖을 찾는 마음이나 갈증 날 때 물을 구하는 마음이 화두를 참구하는 자세에 다름 아니다. 닭이 알을 품을 때는 마음이 사랑으로 충만하고, 고양이가 쥐를 사냥할 때는 몸과 정신이 오직 한 가지 목적에 집중된다. 전혀 가식 없는 오직 참마음 그대로의 간절함이다. 화두를 풀고 진리를 깨닫는 데 간절한 마음은 시작이자 끝이다.

화두를 푸는데 왕도는 없다. 간절함이야말로 화두를 푸는 필요충분조건이다. 한 가지 의문에 마음을 모으고 간절한 마음으로 용맹 정진하는 것이 화두의 요체다. 특별한 요령이 없는 것이 요령인 셈이다. 오직 독실한 각오로 간절히 참구하는 방법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잡념을 버리고 크게 의심하는 가운데 그 보상으로 큰 깨달음이 찾아오는 법이다.

화두는 깨달음을 추구하지만 미지의 세계를 여는 학문과는 다르다. 학문적 접근방법과 친하지 않다. 의문이 논리적으로 해석가능하다면 그것은 이미 화두가 아니다. 논리로 풀리는 것은 참선으로 추구할 가치가 없다. 배워서 알게 된 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지식일 뿐이다. 학문과 지식은 호기심과 무지를 해소해주지만 화두와 지혜는 자신의 본성을 성찰하고 삶을 의미 있게 한다.

삶의 화두를 찾고자 큰스님을 찾는다. 손바닥을 내리친다. ‘이 소리를 잡으라’한다. 무엇을 어떻게 잡으란 말인가. 왜, 무엇 때문에 잡으라는 걸까. 형체도 없는 소리를 잡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가슴이 벌렁거린다. 의문을 품고 계속해서 생각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깨달음과 만날 수 있을까. 믿음이 없이 깨달음은 없을 터다. ‘산그늘이 슬슬 깔리기 시작하면서 개울 저 편 먼발치에서는 누가 돌멩이를 던지고 있다.’ 천둥번개가 치듯 정신이 번쩍 든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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