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막장은 채소를 고기처럼 맛있게 먹게 하는 마술사||오직 국산콩과 소금만으로 만드는 순수

▲ 부부가 농장에서 만드는 된장과 청국장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바구니에 담긴 것이 된장과 고추장 보리막장이다.
▲ 부부가 농장에서 만드는 된장과 청국장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바구니에 담긴 것이 된장과 고추장 보리막장이다.
장(醬)의 역사는 길다. 긴 역사의 길이만큼 이야기도 많다.

중국 서진의 진수가 쓴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고구려 사람들은 장을 잘 담그고 술 빚는 솜씨가 훌륭하다’고 기록돼 있다.

삼국사기에도 신라 신문왕이 왕비를 맞을 때 예물로 메주를 보냈다고 했고, 고려 현종 때 백성들에게 구황식품으로 장을 배급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부터는 만초장(고추장)이 등장한다.

최장수 임금이었던 영조는 고추장 마니아였단다.

장은 된장과 간장, 고추장, 청국장, 막장 등을 말한다.

음식을 만드는 기본 식재료였기에 장 담그는 일을 집안의 가장 큰일로 여겼다.

미리 택일을 하고 몸을 정갈히 해 부정을 타지 않도록 했다. 따라서 장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메주는 짝수로 만들면 불길하다’, ‘신일(申日)에 장을 담그면 맛이 변한다’, ‘한 고을의 정치는 술맛으로 알고 한 집안의 일은 장맛으로 안다’ 등이다.

정월대보름 지신밟기에도 ’장독대풀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역시 장맛이 좋아지고 부정을 타지 않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구미에서 전통방식으로 된장과 간장 고추장, 청국장, 보리막장(이하 된장)을 만드는 강소농을 만났다.

백야농원의 김정훈(65)·이갑자(61) 공동 대표다. 김 대표는 콩을 재배하고, 이 대표는 그 콩으로 된장을 만들어 연간 1억5천만 원가량의 매출을 올린다.

▲ 이갑자 대표가 청국장을 보여주고 있다. 자체 개발해 온습도가 자동 조절되는 청국장 발효기에서 만들어 청국장 특유의 냄새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 이갑자 대표가 청국장을 보여주고 있다. 자체 개발해 온습도가 자동 조절되는 청국장 발효기에서 만들어 청국장 특유의 냄새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 손발 척척 된장 가족

김 대표는 양돈장을 운영했었다.

한때 6천 두를 사육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하지만 IMF금융위기를 넘지 못하고 지인에게 양돈장을 넘겼다.

아버지의 토지를 받아 새 출발을 하려고 했으나 일부만 매각해 일단 부채를 청산하고 남은 토지에 콩을 재배한다.

아내인 이 대표는 전업 주부였다.

종갓집이라 제사도 많았고, 손님도 많았다.

이 대표에게는 음식을 만드는 일은 일상이었다. 시어머니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손맛을 가졌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함께 음식을 만들면서 솜씨를 물려받았지만 본인의 솜씨도 만만찮았다.

마을에 큰일이 있으면 고부가 함께 음식을 만들었다. 이 대표는 결혼하면서 된장을 만들었다.

올해로 35년이다.

장맛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주변에서 이 대표의 된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판매를 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넉넉하게 만들어 주변 사람과 나눴다.

팔아도 되겠다는 주변의 권유로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된장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맛있는 된장에는 시어머니의 솜씨가 묻어있다.

아직도 시어머니는 콩을 삶고 각시(메주를 매다는 짚 매듭)를 만든다. 콩을 잘 삶아야 제대로 된장이 나온다면서 콩 삶는 방법을 가르친다.

어쩌다 콩이 눋기라도 하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무서운 감독이다.

이 대표는 “처음 청국장을 배우면서 잘못된 것을 시어머니 몰래 숱하게 땅에 묻었다”며 그 꾸중 덕분에 이제는 제대로 된 청국장을 만든다고 했다.

남편은 콩 재배, 아내는 된장, 시어머니는 감독을 맡는다. 손발이 척척 맞는 된장 가족이다.

▲ 황토방에서 발효 중인 메주 모습.
▲ 황토방에서 발효 중인 메주 모습.
◆오직 콩과 소금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된장이 있다. 맛도 모두 다르다.

특별한 맛을 강조하는 기능성 된장도 있다. 전통의 맛도 있지만, 현대적인 맛도 있다.

부부는 순수한 맛의 된장을 만든다. 순수한 맛은 곧 전통의 맛이다.

오직 콩과 소금만으로 된장을 만든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콩만을 사용하고 있다.

콩 확보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1차적으로 1만7천㎡의 밭에서 직접 재배한다. 나머지 1만㎡는 이웃 농가와 계약 재배를 한다.

마을 어르신들이 조금씩 재배하는 콩도 구입한다. 가을철이 되면 농장 마당에 이름이 적힌 작은 콩 포대들이 속속 모여든다.

이웃 어르신들이 가지고 오는 것이다.

그냥 처마 밑에 두고 가면 무게를 달아서 값을 치른다. 콩을 사라는 말도 팔라는 말도 없지만 그냥 두고 가면 거래가 성사되는 진풍경이 연출되곤 한다.

부부는 일 년에 한번 신안군 ‘증도’의 염전으로 ‘소금여행’을 떠난다.

일 년 중에서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다.

된장 때문에 농장을 비우고 여행을 가기가 어려운 부부에게 일 년 중에 한번 찾아오는 달콤한 여행이다.

소금을 구입하고 주변 관광을 한다.

염전에서 2~3년 전 생산해 보관 중인 천일염을 구입한다.

농장에 돌아오면 다시 3년간 쌓아두고 간수를 제거한다.

소금 포대는 보관 전에 특별한 샤워를 한다. 포대에 작은 구멍들을 촘촘히 뚫고 물을 뿌려 간수와 개흙(뻘) 등의 이물질을 제거하는 것이다.

포대에 물을 뿌리면 소금이 녹아서 양이 줄어들지만 깨끗한 소금을 얻기 위해서는 손실을 감수한다.

좋은 재료로 좋은 된장을 만들기 위한 부부의 정성과 노력이다.

이런 노력으로 단골 고객이 2천여 명에 이른다.

2003년 첫 고객이 아직도 고객으로 남아 있다. 이제 자녀들이 그 맛을 이어가고 있다.

▲ 백야농원의 항아리들. 항아리마다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 백야농원의 항아리들. 항아리마다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스토리가 있는 항아리

이 대표는 “우리 농장에는 보물이 가득하다”며 마당에 있는 크고 작은 항아리를 가리킨다. 보물 1호란다.

크기도 다르고 모양도 제각각이다.

이 항아리들은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된장을 처음 만들면서 구입한 항아리가 아니라 이웃에서 하나 둘 가져다 준 것들이다.

예전에는 된장이나 쌀을 담았지만 이제 필요가 없다며 부부에게 줬다고 한다.

따라서 항아리들은 모양이 제각각인 것처럼 제각각의 사연을 담고 있다.

가난하던 시절 된장에 무시래기만 잔뜩 넣고 끓인 된장국으로 아이들의 배를 채웠던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고, 가을철 항아리에 가득 찬 하얀 쌀을 보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는 행복한 이야기도 있다.

시집온 첫해에 된장 항아리를 깨뜨려서 시어머니에게 혼이 났던 일, 개구쟁이 아들이 개구리를 넣어두어 놀랐던 일들도 이제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지나던 길에 농장을 들린 할머니들이 자기 항아리를 찾아보고 치맛자락으로 쓱쓱 닦으면서 추억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볼 때는 가슴이 짠해 온다고 한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저 소중한 항아리들을 더 소중히 간직 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며 “항아리뿐 아니라 할머니들의 추억도 잘 지켜나가겠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모든 항아리는 된장을 담그기 전에 짚불로 소독을 하고 수차례 물로 세척을 한다. 된장을 담기 전에 하는 멸균 소독이다. 또 항아리를 황토벽돌 위에 얹어 놓는다. 바람이 잘 통하게 하고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가 항아리에 배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항상 행주로 항아리를 깨끗이 닦는 것은 보물에 대한 애정이고, 할머니들의 추억을 되새기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 백야농원이 생산하는 장류제품 모습.
▲ 백야농원이 생산하는 장류제품 모습.
◆된장과 청국장 그리고 보리막장

된장의 시작은 12월 초에 만드는 메주에서 출발한다.

콩을 큰 가마솥에 8시간 동안 푹 삶아 메주를 만든다.

1차 겉 말림을 하고 황토방으로 옮겨서 한 달 동안 발효를 거친다.

정월보름 전후 말날(馬)에 담그고, 50~60일이 지나면 장 가르기를 한다.

모든 된장과 간장은 2년간 숙성 후에 판매한다.

농장이 들판 한 가운데에 있어서 햇볕이 좋기 때문에 간장을 달이지 않는다.

생간장은 항아리 속에서 계속 발효가 진행되기 때문에 맛과 향이 더 좋다.

청국장은 삶은 콩을 40℃ 정도의 온도에서 2~3일간 발효시켜 만드는 일종의 즉석 식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은 콩에 볏짚 매듭을 꽂아두면 바실러스균에 의해 완성된다.

자체 개발한 청국장 발효기를 이용해 만든다. 김 대표가 농산물 건조기를 개조해 만든 것으로 온도와 습도 조절 장치를 갖추고 있다.

청국장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막장은 ‘막 담가 먹는다’고 해서 막장이라 부른다.

경상도와 강원도에서 많이 담근다.

보리막장은 메주가루에 삶은 보리쌀을 섞고 발효와 건조와 분쇄 과정을 거쳐서 만든다. 여기에 고춧가루와 고추씨가루를 넣고 염도를 맞추면 완성된다.

쌈장의 일종으로 젊은 사람이 많이 찾는다. 된장에 보리쌀을 혼합한 강원도 막장과는 다르다.

이 대표는 “보리막장은 채소를 고기처럼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마술사”라며 UN이 정한 세계 과일·채소의 해를 맞아 보리막장과 쌈채소를 함께 먹어 볼 것을 권했다.

현재 운영 중인 된장 체험 활동을 확대해 어린이들이 고향의 맛을 잊지 않도록 하고 ‘된장 전수관’을 건립해 인류에게 보편적 가치가 인정된 된장의 참맛을 계속 이어나가는데 일조를 하고 싶다는 게 부부의 바람이다.

▲ 이갑자 대표가 항아리에 보관중인 된장의 숙성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 이갑자 대표가 항아리에 보관중인 된장의 숙성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



이동률 leedr@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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