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자영업자, 저소득층의 삶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형국이다. 그런데 민생을 보듬어야 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뜬금없는 일을 벌였다. 사태는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다. 비판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지적이 봇물이다. 내년 대선을 의식해 또 다시 국민 편가르기에 나선 것이란 의혹도 제기된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는 ‘언론재갈법’, ‘언론징벌법’, ‘언론중죄법’, ‘언론탄압법’, ‘조국지키기법’ 등 각종 비아냥이 쏟아진다. 민주당의 정치에는 ‘여야협치’란 것이 없는 것 같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하다. 미국의 아프간 철수작전을 연상시킨다. 국민들은 불안하다. 나라를 어디로 끌고가려 하나.

---정말 국민 생각한다면 밀어붙여선 안돼

논란이 있고 반대가 심하면 시간을 갖고 조정하는 것이 순리다. 좀 더 시간을 갖는다고 뭐가 문제 되나. 조급하게 처리하면 탈이 난다. 세상사 모든 일이 그렇다.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면서 되레 국민의 마음을 힘들고 불편하게 한다. 조금이라도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언론중재법을 이렇게 밀어붙이면 안된다.

이번 아니면 기회가 없나. 정치지형 변화로 가까운 시일 내 기회가 오지 않으면 그것은 국민의 뜻이다. 새로운 시도를 하라는 것이다. 개혁은 민주당의 전유물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이 선이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국민은 그런 독선을 원치 않는다.

곳곳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국내외 언론단체와 법조계는 하나같이 부작용을 우려한다. 국내 언론단체들은 “한국 언론사에 유례없는 언론자유 침해의 기록으로 남을 것”,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반헌법적 개정”이라며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진보성향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입법 속도전으로 여론수렴이 미흡하다. 사회적 합의를 통한 의결을 도모하라”고 촉구했다.

국제사회에서도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신문협회는 “비판적 토론을 억제하는 최악의 권위주의 정권이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국제기자연맹은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게 된다”며 법안 폐지를 촉구했다.

최근 들어서는 민주당 의원들도 잇따라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조응천 의원은 “4·7 재·보선에서 질타받았던 오만과 독선의 프레임이 부활하는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혔다. 소신파로 분류되는 이상민 의원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궁극적으로 언론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노웅래, 오기형, 이용우, 장철민 의원 등은 지난 27일 당 지도부에 “30일 본회의 상정을 미뤄달라”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국민을 위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충정일 것이다.

이에 앞서 대선 경선주자인 김두관 의원은 “독소조항이 많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곧 한발 물러서며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정권 교체시 진보언론을 잡을까 우려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해명은 개정안이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언론을 탄압하는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사실을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침묵깨고 민주당 의원 우려 표명 늘어

민주당 의원들의 우려 표명과 신중론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당내 의견수렴마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언론중재법은 민주당이 단독으로 상임위 단계의 의결을 강행하면서 내용을 즉석에서 고치는 일이 되풀이됐다. 졸속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번 개정안은 언론보도의 피해를 구제한다는 명분을 앞세운다. 그러나 독소조항이 여럿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 언론사에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이 가능토록 한 조항, 기사열람 차단 청구권 등이 대표적이다. 남용위험이 크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축시킬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다수의 헌법학자들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위헌 결정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언론의 비판기능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정당한 비판 기능이 위축되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민주당은 민심이 더 이상 돌아서기 전에 언론중재법 개정 시도를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

지국현 논설실장



지국현 기자 jkh8760@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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