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더위의 뜨거운 햇살도 입추, 처서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져 내린다.

수박 값이 얼마를 기록했고, 폭염에 전력예비율이 얼마를 갱신했다는 뉴스도 이젠 지나간 먼 얘기로 들리면서 뜨겁게 화려했던 여름도 서서히 막을 내린다. 처서를 지나니 아침저녁으로 귀뚜라미가 울면서 가을을 부른다.

처서 무렵이면 벼 이삭이 패는 때이다. 지금쯤 들판의 푸른 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덜 여문 쌀알 주변으로 하얀 벼꽃이 피어난다. 벼꽃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벌도 사람도 넉넉하게 배불리는 소중한 꽃이다.

쌀을 뜻하는 한자어 ‘米’자는 한 알의 쌀에 농부의 손길이 여든여덟(八+八)번 들어간다는 뜻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매년 8월18일은 ‘쌀의 날’이다.

코로나19로 정시 칼퇴근(?)이 일상이 되면서 무료한 저녁 시간에 생애 첫 빵만들기에 도전했다. 퇴근길에 인근 마트에서 재료를 구입하고 가장 쉽다는 모닝빵부터 만드는데 반죽에서 완성되기까지 무려 3시간이나 걸렸다. 완성된 빵을 직장 동료에게 시식하는 아량(?)을 베풀었더니 동료들이 ‘엄지척’을 해준다. 갓 구운 고소한 빵냄새는 덤이지만 빵만들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는 흠이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밥 짓기는 빵만들기와 달리 쌀을 씻고 불리고 밥이 완성되기까지 1시간 이내면 족하다. 이래서 밥은 집에서 지어야 하고, 빵은 빵집에서 사와야 하나 보다.

“밥 먹었어?”라고 하는 것은 “식사했어?”라는 말이다. 밥이 한 끼 식사 전체를 대표하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밥 외에 빵이나 고기 등 온갖 것을 먹어도 밥을 안 먹었다면 그것은 아직 끼니를 때우지 않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 우리네 식습관이지 싶다. 한국인의 주식은 뭐니뭐니해도 밥이기 때문이다.

쌀과 채소를 먹는 편이 육식을 하는 것보다 두뇌발달을 좋게 한다는 실험 결과 보고가 있다. 쌀은 알곡을 그대로 익혀 먹는 입식(粒食)이고, 채소는 섬유소가 많아서 오래 씹어야 하므로 저작근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전두엽을 자극해 두뇌가 좋아진다고 한다. 육식동물은 힘은 세나 지구력이 떨어지고 초식동물은 힘은 약하지만 지구력은 강하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이 꾸준히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쌀보다 고기와 빵을 많이 섭취하는 식습관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전문가들은 건강을 위해서 거친 현미나 잡곡밥을 많이 권한다. 그러나 밥을 잘 먹지 않는 어린이에게 현미밥이나 잡곡밥을 억지로 권하진 말자. 어른들의 건강을 위한 현미밥이나 잡곡밥이 치아가 덜 성숙된 어린이들에게는 식사에 대한 부담감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식감이 좋지 않은 잡곡밥은 밥맛에 대한 거부감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에게는 반드시 갓 지은 흰 쌀밥을 먹도록 해서 밥 맛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것이 필요하다. 몸에 좋다고 콩밥을 어린이에게 억지로 먹이면 입안에서 오물거리다 뱉어내는 광경을 누구나 한 번쯤 목격했으리라.

4살짜리 애기가 있는 큰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줬더니 며칠 뒤 손주가 갓 지은 흰 쌀밥을 곧잘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밥 잘 먹는 손주를 보니 여간 기특해 보이지 않는다.

농민신문에 따르면 일본 전국농업협동조합연합회(JA전농)가 쌀 소비확대를 위한 ‘NO RICE,NO LIFE’ 프로젝트를 추진해 일본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밥이 없으면 삶도 없다’는 뜻으로 쌀 소비의 중요성을 강조한 슬로건이다. JA전농은 코로나19로 집밥 수요가 늘자 쌀이 건강에 이롭다는 점을 적극 홍보하면서 유명한 보디빌더이자 일본 체육대학교수인 오카다 다카시씨를 기용해 근육발달에 쌀 섭취가 도움이 된다는 점을 홍보해 일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JA전농과 오카다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근육 발달 원하세요? 쌀밥 드세요”라고.

쌀은 우리의 주식(主食)이며, 우리 한민족은 쌀과 함께 살아왔다. 벼농사는 식량안보, 환경보전 등 공익적 가치가 있는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자산이며, 우리 쌀에 대한 소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갓 지은 밥 냄새는 가장 좋은 향기이자 가족의 건강 냄새이며 보약 냄새다.’

손동섭 농협손해보험 경북지역총국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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