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운다

발행일 2021-08-04 10:34:3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정적을 누르고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여야 대권 주자, 참모와 책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다. 정책과 비전 제시보다는 천박한 인신공격과 흑색선전이 난무한다. 세상이 혼탁할 때 우리는 과거를 거울삼아 오늘을 응시하며 내일을 예측한다.

킹메이커나 명참모를 흔히 ‘장자방’이라고 한다. 중국 한(漢) 나라 건국 공신 장량의 자(字)가 자방(子房)인 데서 유래했다. 그는 참을성 없고 여러 면에서 부족하던 유방을 도와 진나라를 멸하는 데 공을 세우고 한나라의 기틀을 마련했다. 유방은 탁월한 참모들의 도움으로 기원전 202년 한 고조로 즉위했다. “나는 막사에서 계책을 짜내 천 리 밖 전투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데는 장량(張良)만 못 하고, 나라를 편안히 하고 백성을 배불리 먹이고 군량을 조달하는 데는 소하(蕭何)만 못 하며, 백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데는 한신(韓信)만 못 하다. 그러나 내가 장량과 소하, 한신과 같은 참모와 용장을 잘 통솔했기 때문에 그들은 재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천하를 차지한 이유다. 반면, 항우는 책사들을 믿지 못하고 범증 한 사람만 썼으며 그마저 끝까지 믿지 못했다. 이것이 항우가 내게 진 이유다.” 개국 후 도읍지 낙양의 남궁에서 성대한 잔치를 베풀면서 유방이 한 말이다. 장량은 한신과 팽월 같은 공신들이 살해되는 모습을 보고는 신선술을 배운다는 등의 이유로 은신하고는 두문불출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였다. 장량은 유방이 죽고 8년 뒤 세상을 떠났다.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 그는 고려말 신진 사대부로 크게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성계 또한 내세울 것이 없는 변두리 함흥 출신이었다. 이성계는 책 읽기를 좋아하고 인문적 소양을 갖춘 무장이었다. 정도전은 이성계의 리더십을 확인하고는 그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고 통치이념을 확립했다. 그는 간혹 취중에 이렇게 말했다 “한 고조가 장자방을 쓴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장자방이 그를 키운 것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성계를 앞세워 조선을 세웠다는 말이다. 그는 왕을 잘 교육해 재상 중심의 정치를 하려고 했다. 그는 왕자 방석을 세자로 앞세우고는 방원을 주류 세력에서 배제하려고 사병을 거두게 했다. 이에 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켰고 정도전도 죽였다. 정도전, 그는 이인자의 지위에 너무 욕심을 내다가 몰락을 자초했다.

신진 사대부로 태종의 장자방이었던 하륜은 경복궁 건립 위치를 두고 정도전과 대립하다가 그의 견제로 한직으로 밀려났다. 관상과 풍수지리에 밝았던 그는 왕자의 난 때 이숙번과 함께 방원을 도왔다. 이성계는 방원에게 권력을 넘기고 함흥으로 훌쩍 떠났다. 방원이 정통성 문제를 해결하려고 아버지를 모실 때, 하륜은 아버지를 마중 나가는 방원에게 차일(遮日)을 받치는 기둥으로 큰 나무를 쓰게 했다. 이성계가 가까이 다가와 방원에게 화살을 쏘았지만, 방원은 기둥을 방패막이로 화살을 피했다. 이성계가 가까이 다가와 노기를 풀고 “하늘이 시키는 것이구나”라고 말하며 옥쇄를 넘겨주었다. 윗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았던 하륜은 마지막 순간까지 태종의 신뢰를 받았다. 태종은 “하륜은 입이 무거워 저 사람의 귀에 들어간 것은 쉬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라고 했다. 실록은 “하륜은 천성적인 자질이 중후하고 온화했다. 결단하고 계책을 정하면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인재를 제대로 천거하지 못할까 늘 두려워했고, 집에 머물 때는 사치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글 읽기를 좋아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채 시를 읊으며 자고 먹는 것도 잊었다.” ‘태종실록 하륜 졸기’의 묘사다. 하륜이 스스로 물러나 선대왕을 돌아보던 도중에 죽자 왕은 조회를 폐하고 고기 든 음식을 먹지 않으며 슬퍼했다. 나아가고 물러갈 때를 알아야 정치 무상, 권력 무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권력은 사람을 후안무치하게 만든다. 누구라도 권력의 맛에 취하면 초심을 잃게 된다. 국민이 안중에 없으면 부패와 탐욕이 거리를 활보한다. 부정과 불의, 가짜와 진짜를 판단해 나라를 바로 세우는 궁극적 책임은 국민에게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국민이 밝은 눈을 가지고 지혜로워야 나라가 바로 선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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