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손진은

발행일 2021-08-02 13:59:4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세상 가장 맑은 눈을 가진 생물은/ 파리라지/ 수천 홑눈으로 짜 올린 겹눈/ 흰 천보다 순금보다 거울보다 맑게 빛나게/ 두 손으로 두 팔로/ 밤이고 낮이고 깎아낸다지/ 그렇게 깎인 눈 칠흑의 어둠도 탄환처럼/ 뚫을 수 있다지/ 꿀이 있는 꽃의 중심색이 더 짙어지는 걸 아는 것도/ 단숨에 그 깊고 가는 통로로 빨려드는/ 격렬한 정사(情事)도/ 다 그 눈 탓이라더군/ 공중을 날면서도 제자리 균형 잡아주는/ 불붙는 저 볼록거울!/ 세상에 절여진 눈 단내가 나도록 깎고 깎아야/ 자신이든 적이든 먹잇감이든 제대로 보이는 법/ 같은 태생이면서도 짐짓/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손 비빈다고/ 날마다 닦아야 할 죄가 무어 그리 많으냐는 뾰로퉁한 입들에게/ 폐일언하고/ 눈알부터 깎으라고/ 부신 햇살 떠받치며 용맹정진하는/ 파리 대왕, 파리 마마들/ 소리들이/ 천둥같이 쏟아진다

「고요 이야기」 (문학의 전당, 2011)

파리는 모기, 바퀴벌레와 함께 3대 해충으로 꼽힌다. 그만큼 귀찮고 성가신 벌레다. 촘촘히 난 몸과 다리의 잔털에 수많은 병원균을 묻혀서 사람들에게 옮긴다. 거의 모든 사람이 파리를 싫어하는 것은 시공을 초월해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 연유로 파리의 구제나 박멸은 인류 공통의 과제로 지속적으로 연구돼 왔다. 아직도 지구는 파리 천지다.

파리가 싹싹 빌 때 때려잡아야 한다는 말이 대박을 터트렸다. 조국 전 장관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 때문이다. “파리가 앞발을 싹싹 비빌 때 이 놈이 사과한다고 착각하지 말라. 파리가 앞발 비빌 때는 뭔가 빨아먹을 준비를 할 때이고, 이놈을 때려잡아야 할 때이다.” 사죄할 때 반대파를 멸절시키자는 점, 부인할 수 없는 내로남불의 증좌로 조롱거리가 된 점 등 그 취지나 정치색을 사상한다면 이는 핵심을 잘 잡아낸 절묘한 비유다. 허나 이 경우의 파리는 나쁜 해충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한계에 여전히 갇혀있다.

시인이 파리의 알려지지 않은 면모에 주목한 점은 새롭고 놀랍다. 인간이 본 받아도 좋을 품성을 인류의 공적이라고 손가락질해오던 해충 파리에게서 찾아낸 것이다. 밤낮으로 부지런히 겹눈을 손발로 깎은 덕분에 파리가 세상에서 가장 맑은 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가히 경이로운 발견임에 틀림없다. 지금까지 가져온 파리에 대한 최악의 부정적 인식을 뒤집은 발상의 전환이다. 해충의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희석시킬 실마리를 제시했다는데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어둠을 뚫어볼 수 있고 꽃 속에 숨어있는 꿀을 찾아낼 수 있는 파리의 맑은 눈은 인간이 벤치마킹해야할 대상이다. 격렬한 정사도 다 그 맑은 눈 덕택이라 한다. 그러한 한도 내에서 파리의 위상을 다시 재정립해야할 터다. 잘못한 게 워낙 많아 밤낮으로 손발이 다 닿도록 싹싹 빈다는 기존의 비유는 이젠 고민해야 할 낡은 표현일 수 있다. 싹싹 빈다고 보는 시각은 때려잡아야 한다는 선입견에서 나온 선택적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

인격을 수양하고 실력을 쌓는 일에 사뭇 게으른 사람이 열심히 갈고 닦아 밝은 눈으로 바른 길을 잘 찾아가는 사람을 밴댕이 속으로 질시하고 투기한다. 항상 쉴 새 없이 겹눈을 깎으며 먹거리를 채집할 실력을 기르고 짝짓기에 대비하는 파리보다 나은 게 별로 없는 셈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못났다고 하더라도 파리만도 못하다는 욕을 먹어서야 되겠는가.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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