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평 남짓 안방에 불쑥 찾아온 침묵과/햇빛도 몸을 사려 소용없는 밤 열 시 반/빛 잃은 시각과 공간에서 넌 점점 야위어도//켜졌다 꺼졌다 하는 ON OFF의 갈림길에서/낮과 밤 그 사이에서 눈 감았다 떴다 한 넌/기어코 살아 있음을 화들짝 보여줬어//새것이 으스대며 꿰차는 낯선 이곳/죽도록 밝아야 죽지 않는 삶이 있어/길고 긴 터널 지나며 눈이 부실 창백한 너//이 순간 수명 다한 널 누군가 밟고 가도/밝은 날 존재감 없이 숨죽여 살았어도/밤하늘 시리우스보다 더 빛나는 삶이었어

「정음시조」 (2020, 2호)

조한일 시인은 2011년 시조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고, 시조집으로 ‘지느러미 남자’, ‘나를 서성이다’가 있다. 시대정신에 바탕을 두고 거침없는 필치로 자신의 시 세계를 다채롭게 천착 중이다.

‘형광등을 갈며’를 보자. 나직하게 읊조리는 언술을 따라가는 일이 흥겹다. 독자가 그 다음은 또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하게 만든다. 세 평 남짓 안방에 불쑥 찾아온 침묵과 햇빛도 몸을 사려 소용없는 밤 열 시 반 빛 잃은 시각과 공간에서 점점 야위어가는 형광등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화자는 생각에 잠긴다. 그는 무수히 켜졌다 꺼졌다 하는 ON OFF의 갈림길에서 낮과 밤 그 사이에서 눈 감았다 떴다 하기를 거듭했다. 그야말로 곤비한 노동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기어코 살아 있음을 화들짝 보여주곤 했던 것이다. 더구나 새것이 으스대며 꿰차는 낯선 이곳에서 죽도록 밝아야 죽지 않는 삶이 있음을 자각하고 길고 긴 터널 지나며 눈이 부실 창백한 너에 대해 안쓰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화자는 수명 다한 널 누군가 밟고 가도 밝은 날 존재감 없이 숨죽여 살았어도 밤하늘 시리우스보다 더 빛나는 삶이었음을 굳이 끝부분에서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은 자기 위안의 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위어가는 형광등을 통해서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넌지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시의 화자는 다소 능청스러운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특히 셋째 수에서 죽도록 밝아야 죽지 않는 삶, 이라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누구나 생각하는 점이지만 이렇게 적실하게 표현함으로써 인생의 한 단면을 축약해 놓은 듯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끝으로 낡은 형광등을 두고 시리우스보다 더 빛나는 삶이었다고 노래하고 있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자존의 극대화이기 때문이다. 시리우스는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로서 천랑성, 낭성, 큰개자리 알파라고 부른다고 한다. 태양을 제외하고는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를 결구에서 떠올린 것은 그만큼 한 사람의 인생이 고귀하다는 것의 한 방증이 되겠다.

그는 ‘젓가락’이라는 시조에서 묘한 정경을 도출한다. 밥상 위 국물 빼고 다 집어 올린다는 젓가락, 가위처럼 벌어져도 날카롭지 않으며 둘이서 한 몸짓하는 부부 닮은 젓가락을 새삼스럽게 살피며 그것 참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앞서 본대로 둘이서 한 몸짓하는, 이라는 구절은 저절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렇게 살고 있기에 그런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왔을 터다. 사는 게 서툴러서 비틀대어 속상할 땐 명이나물 찢듯이 삶은 감자 찌르듯이 칼처럼 살기도 하고 송곳처럼 살기도 하는 젓가락이다. 비근한 소재인 젓가락을 두고 이렇듯 맛깔 나는 두 수의 시조로 빚은 점이 정겹고 친밀하다. 일상에서 비롯된 소박한 작품이지만 문학성을 함유하고 있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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