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백정의 탄생~

… 계모가 들어오면서 국민학교 4학년을 다니다가 그만뒀다. 학교 가는 옆집 친구 정태가 부럽다. 등교하는 그 친구가 안보일 때까지 바라보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다. 외양간엔 소가 늘 서너 마리 머문다. 소 먹일 풀을 베어오고 소를 잡느라 학교 갈 새가 없다. 말을 듣지 않으면 보육원으로 보낸다는 계모의 협박이 무섭다./ 계모와 재혼하면서 아버지는 땅을 팔아 정육점을 냈다. 정육점을 했던 계모의 결혼조건이었다. 정육점에 고기를 공급하기 위해 창고에서 소, 돼지를 잡았다. 소를 혼자서 잡기 힘들어 내가 아버지 일을 거들었다. 외양간에서 며칠 키우다가 창고에서 잡았다. 부지런히 꼴을 베고 돼지죽을 수거해왔다. 소가 가련했지만 먹고살기 위해 소를 죽여야 살 수 있었다. 사람이 고기를 먹어야 하니 소를 죽여야 한다고 합리화했다. 피가 낭자한 장면을 보고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담배를 일찍 배웠다./ 정육점 일이 바빠지자 혼자 소를 잡아야 했다. 과자를 잔뜩 사주고 정태를 꾀여 들였다. 열세 살이 해내기엔 무리였지만 궁즉통이다. 정태가 중학교에 진학하고부터 혼자서 요령껏 해냈다. 정태와 치킨을 먹으며 생맥주를 마시던 어느 날. 자기 같았으면 벌써 도망갔을 거라며 지금이라도 도망가서 기술이라도 배우라고 충고했다. 각자 맡은 역할이 있는 거라고 말했지만./ 아버지에게 그만 두겠다고 했다. 일은 험하지만 돈이 된다며 나를 설득했다. 정 그만두려면 후임자를 데려오라는 조건을 걸었다. 금팔찌, 금목걸이로 휘감은 아버지는 옛날의 순박한 농군이 아니었다. 돈 맛을 알았고 돈의 힘을 누리고 제법 행세했다. 아버지는 미리 생각해 둔 카드를 꺼냈다. 선술집 딸 소희에게 장가 보내주겠다는 것. 예쁜 소희를 얻고 계속 소를 잡았다. 내가 잡은 소가 맛있다는 소문이 났다. 정육점은 승승장구했다. 내 일도 늘어났다. 소희와 함께 소를 잡게 되자 일의 속도가 급속히 빨라졌다. 소희는 아버지에게 따져 수수료를 대폭 인상했다./ 소희가 바람을 피운다고 계모가 알려주었다. 눈독을 들이는 남자들이 많았으므로 그 말을 곧이 들었다. 소희는 울면서 나갔다. 계모는 위자료를 줘야 한다며 모아둔 돈마저 빼갔다./ 일이 늘어 조수를 두라 했지만 거절했다. 계모는 제천 친정동네에서 바람피울 걱정을 안 해도 될 여자를 데려왔다. 소를 잡다가 피 범벅이 된 알몸으로 그녀와 정사를 치렀다. 아버지와 선지를 얻으러 오던 사람들의 발길마저 끊겼다. 피 칠갑을 한 채 창자를 이용한 변태 성행위를 하고 빨간 알몸으로 편하게 소를 잡았다.…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고되고 눈물겹다. 계모의 계획에 따라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소를 잡지만, 복선인지, 의외로 잘 적응한다. 순박했던 아버지도 돈맛을 알게 되면서 계모를 닮아간다. 부자의 정이 옅어진다. 당찬 색시를 맞아 독립할 계획을 하지만 계모의 치밀한 덫(?)에 걸린다. 계모는 친정마을의 통제 가능한 처자를 데려와 엮어준다. 소 잡는 일에 맞는 궁합인지 모른다. 천생연분 두 사람은 무념무상 소 잡는 일에 빠져든다. 백정을 천직으로 인식하고 진정한 백정으로 거듭난다. 직업에 귀천이 따로 없다. 적성에 맞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천직이다. 직업과 성에 대한 편견을 깨야 신천지를 보는 눈이 생긴다. 도를 깨친 터다. 계모가 열린 스승일지 모른다. 내키지 않은 불운한 출발이지만 해피엔딩이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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