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다수이고 의견이 불일치할 경우, 그 의사결정은 부득불 힘이 센 쪽으로 결정된다. 힘센 쪽을 정하는 평화적 방법으로 투표가 보편적이다. 투표는 보통 다수결원리를 기초로 한다. 투표는 다양한 의사에 대한 양적인 비교교량 방법일 뿐 질적인 비교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다수결원리가 최선의 결론을 도출해준다고 할 수 없다.

구성원 간의 권한이 같지 않은 경우 그 권한에 비례해 투표권을 부여한다. 주식회사의 주주총회가 대표적이다. 보유수량에 비례하는 의결권이 주주에게 주어진다. 1주1표주의다. 한 명의 주주가 과반의 주식을 장악하면 의사결정권도 독점하는 구조다. 구성원 간의 권한이 동등한 경우 다수결원리가 정직하게 적용된다. 정직한 다수결도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기 힘들다. 허나 다수결의 횡포를 막을 뾰족한 방법은 아직 없다. 다수결을 대체할 수 있는 더 나은 대안이 절박하다.

민주국가에선 누구나 동등한 권한을 갖는다. 부자든 빈자든, 배운 사람이든 무지한 사람이든, 현명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노인이든 젊은이든,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무차별적으로 평등하다. 1인1표주의다. 다수결로 대표를 뽑고 다수결로 입법한다. 다수결의 내재적 결함으로 인해 최선의 선택을 기대하기 힘들지만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비싼 대가를 치루는 셈이다.

정부수립 후 73년간 대선을 치렀지만 현명한 대통령을 선택했다고 평가받은 경우는 드물다. 혁명이나 쿠데타를 통해 변칙적으로 권좌에 오른 대통령을 제외한다면 그 결과는 더 참담하다. 힘으로 집권한 대통령이 선거로 뽑은 대통령보다 더 나았다는 일부 평가는 다수결원리의 맹점을 웅변하는 증좌다. 총선이나 지방선거는 관심이 떨어지는 만큼 결과는 더 신통찮을 터다.

다수결의 허점은 국회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과반수를 훌쩍 넘긴 거대여당이 다수결의 탈을 쓴 횡포가 어떤 것인지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상임위 위원장 독식, 선거법과 공수처법 그리고 검·경수사권 조정법안 등의 패스트트랙, 5·18 왜곡처벌법, 대북전단금지법 등 예시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법안들이 여당 단독으로 날치기 처리됐다. 이젠 날치기가 일상처럼 돼버렸다. 정치부재와 폭정을 속수무책 지켜봐야 하는 상황은 한 번의 다수결 선택이 주는 폐해라 하기엔 너무 가혹하다. 다수결에 브레이크를 다는 묘책 마련이 화급하다.

실체적 정의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보통, 평등, 직접, 비밀 등 선거 4대 원칙이 그것이다. 이는 후유증 걱정 없이 공정한 조건아래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투표함으로써 개개인의 의사가 왜곡 없이 투표에 반영되도록 하기 위해 오랜 세월 벼루어진 결과물이다. 치열한 투쟁 끝에 획득한 소중한 전리품이고 투표를 의미 있게 하는 원칙이다. 비밀선거는 투표내용을 공표하지 않는 것이다. 결과에 대한 비난이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고 자유로운 의사표시를 가능하게 한다. 비밀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 보복당할 위험성이 있고 투표가 형해화 될 개연성마저 존재한다.

지난 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두고 논란을 벌이는 일은 금기다. 비밀선거를 무력화시키고 다수결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유력 대선주자가 17년 전의 투표를 두고 옥신각신 다투는 행태는 한심하기 그지없다. 삼복더위에 코로나까지 기승을 부리는 최악의 상황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을 두고 벌이는 이전투구는 정말 볼썽사납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선 어떤 일이라도 벌일 태세다. 화가 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괴감마저 든다. 이 참에 유권자로서 선거에 임하는 임전태세를 재점검해야 할 것 같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이전에 다수결의 횡포를 막고 함량 미달 인사가 선택되지 않도록 유권자부터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감성과 포퓰리즘,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이 다수결의 결함을 메워주는 원론적 방법이다. 거대여당의 독단적 횡포와 그 대선주자의 막가파 추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깨어있는 유권자가 매서운 회초리를 들어야 할 때다. 유권자의 생각이 반듯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 다음 선거엔 꼭 반듯한 선택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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