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에 말 달리고/순록이 썰매 탄다//하얗게 돌아가는 필름은 밤새우고//관객은/오직 잠만을/꿈꾸며 편집한다//잠에 관한 명상과/수면음악 틀어놓고//간절히 빌어보는 고가 터질 잠의 나라//또다시/황량한 눈발/돌아가고 감긴다

「시조미학」(2021, 여름호)

박송애 시인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2021년 시조미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잠을 편집한다’를 두고 손증호는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면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 참신한 제목이 독자의 눈길을 끌게 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즉 잠에 관한 명상과 수면음악 틀어놓고 숙면을 꿈꾸지만 코로나19 사태 탓인지 또다시 황량한 눈발로 돌아가고 있다고 살핀다. ‘잠을 편집한다’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시상이 활달하게 전개되고 점이 특징이다. 백야에 말 달리고 순록이 썰매 탄다, 라는 첫머리부터 다르다. 거침없는 수사로 긴장미를 부여하고 있다. 백야와 순록과 썰매라는 시어를 통해 한순간 동화와 같은 상상력의 세계로 이끌려가게 한다. 금세 그 정경 속으로 빨려들어 가서 자신이 주인공이나 된 듯한 기분이 든다. 하얗게 돌아가는 필름은 밤을 새우고 관객은 오직 잠만을 꿈꾸며 편집한다, 라는 중장과 종장의 독특한 이미지 구현도 예사롭지가 않다. 그런 까닭에 시의 화자는 잠에 관한 명상과 수면음악 틀어놓고 간절히 빌어보는 고가 터질 잠의 나라에 이르러 또다시 황량한 눈발이 돌아가고 감기는 것을 겪으면서 고뇌를 거듭한다. 이렇듯 ‘잠을 편집한다’는 참신한 제목과 거기에 걸맞은 간명한 시상의 전개를 통해 시조의 또 다른 맛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다른 작품 ‘바늘에 실’은 그대 끄트머리에서 그대 숨 사윌 때까지 그대 허리 잡지 않고 발목도 잡지 않고 촘촘히 당신 가는 길 그림자로 따랐지요, 라고 애절하게 노래하고 있다. 이어서 그대 이리저리 아무 데나 걸어가면 어김없이 비뚤비뚤 어지럽게 따랐지요, 라면서 갔던 길 되돌아가면 돌아보는 박음질을 제시한다. 끝으로 그대에게 묶여 있는 시간은 늘 짧았고 몹사리 매듭지어 결연히 자르는 별리를 생각하며 총총히 목숨의 그늘 서나서나 따르겠다고 노래한다. 전편이 그지없이 절절해 눈물이 배어날 지경이다.

박송애 시인은 또 ‘아버지 마당’에서 적요가 수놓고 간 비질 자국이 선명한 것을 기억하면서 은모래 수석 몇 점 숨죽여 바라보던 곳인 은각사 뜨락 바람조차 숨 멎을 듯하던 때를 아련히 그리고 있다. 새벽을 쓸어놓은 아버지가 기다리면 골목길 들어서는 짙게 배인 풀냄새와 함께 바지게 들꽃 한 아름 사립 열어 제치던 순간을 회상한다. 이에 대해 손증호가 비질 자국 선명한 은각사 뜨락에서 어린 시절 새벽에 마당을 정갈하게 쓸어놓고 좋아하셨던 아버지를 소환해 독자들에게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떠오르게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적실한 의미부여다.

시 쓰기에서 새로운 목소리의 발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무엇이 새로운지, 어떻게 움직여야 새로운지, 어떤 표현이 참신한지 그때그때마다 다를 것이다. 일종의 상황논리, 정황논리다. 모든 시인이 고심을 거듭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을 터다. 박송애 시인은 이미 그것을 잘 알아차리고 자신이 걸어갈 시의 길에 대한 궁구와 천착에 힘쓰고 있다.

유년시절 아버지와 함께 행복한 아침을 열던 시인은 흙과 풀과 대자연을 통해 문학적 감성을 키워왔다고 말한다. 그래서 바지게에 들꽃이나 송이버섯, 싸리버섯 향을 싣고 오던 아버지처럼 자신의 문학바지게에 독특한 리듬이 있는 시조로 가득 채우고자 끊임없이 열망한다. 그것은 진실로 실현가능한 꿈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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