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닥복닥 걸어온 한 생애를 읽는다/쇠심줄 돋우며 달구지 짊어진 길/뼛속에 돋을새김한 우직을 풀어낸다//커다란 두 눈으로 세상을 굴리며/변죽 울듯 끓는 바람 쇠귀에 경을 읽고/채찍질 멍에 진 등짝 이골이 다 배겼다//한나절 턱 괴어 시간 함께 고는데/울멍울멍 삭힌 말 그제야 녹는다/말로는 다 뱉지 못한 골수 박힌 저 진국

「정음시조」(2021, 3집)

김미경 시인은 대구 출생으로 2017년 등단했다. 고다는 ‘진액이 나오도록 오래 푹 끓이다’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흔히 곰국을 끓일 때 많이 쓴다. 이 작품을 두고 김삼환은 “턱을 괴고 앉아서 소뼈를 고아 국물을 우려내는 과정이 눈앞에 그려진다”면서 “그 국물은 고단한 서민의 삶을 북돋아주는 힘이 돼줄 것이다”고 평가한다. 복닥복닥 걸어온 한 생애를 돌아보는 일은 고르지 않게 살아온 화자의 삶과 등치되는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평범한 소재에서 깊은 사유를 이끌어내며 시조의 리듬을 잘 살린 점과 시어를 배치하는 솜씨가 비범하다고 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로 한 생애는 쇠심줄 돋우며 달구지 짊어진 길이었다. 그리해 뼛속에 돋을새김 돼있는 우직을 풀어낸 것이다. 여기서 우직이라는 말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어쩌면 우직은 화자의 인생철학일지도 모른다. 삶의 모토로 봄이 옳을 것이다. 우직은 어리석고 고지식하다. 즉 성질이 곧아 융통성이 없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당사자는 현실에서 적잖은 손해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소처럼 커다란 두 눈으로 세상을 굴리며 변죽 울듯 끓는 바람 쇠귀에 경을 읽고 채찍질 멍에 진 등짝 이골이 다 배길지라도 그 길을 걷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화자는 한나절 턱 괴어 시간 함께 고는 것을 바라보면서 울멍울멍 삭힌 말 그제야 녹고 있는 것을 세세히 살핀다. 그것은 말로는 다 뱉지 못한 골수 박힌 진국이어서 일순 가슴 뭉클함을 떨치지 못한다.

그는 또 ‘기다림’에서 걸쳤던 한 생의 칠 훌러덩 벗겨진 채 저무는 햇살만 까딱까딱 졸고 있는 골목 앞 폐기 딱지 붙은 주인 잃은 흔들의자를 통해 한 초상을 떠올리게 해준다. 이어서 자식처럼 안기었던 정든 이의 지문 꽃을 바람이 핥아가며 수소문해보는데 인연도 닳고 해지면 흩어지는 먼지일 뿐임을 자각한다. 총총 박힌 사연 같은 못 하나 쑥 빠진, 삐거덕 흔들리며 세월에 닳은 관절을 떠올리면서 아버지 휘어진 등처럼 구부정한 기다림을 아프게 바라본다. 이종문은 ‘기다림’을 두고 작품 전체가 거대한 비유라면서 시종일관 제 역할을 끝내고 버려진 의자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실상은 의자가 아버지에 대한 정서적 등가물이기 때문에 그러하다고 보고 있다.

김미경 시인은 ‘고다’와 ‘기다림’을 통해 사람살이를 진지하게 탐구한다. 진정성 있는 삶이 무엇인지, 더불어 사는 길은 어떠한 것인지를 환기시켜준다. 그의 시론이자 인생론을 축약하는 말은 우직이다. ​또한 ‘기다림’을 통해 기다림의 미학이 무엇인지 곰곰이 되뇌어 보게 하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러한 진실한 마음씀씀이가 창작에의 열망과 잘 결집돼 부단한 추동력을 가질 때 불후의 명작과 언젠가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이른 새벽부터 아파트 방충망에 붙어서 우는 매미 한 마리가 오늘도 시인에게는 경이로운 시를, 평범한 생활인에게는 근면을 주문하고 있는 것을 귀담아 들어보시라. 매미가 온몸으로 노래하면서 벅찬 하루의 시작을 알리듯 시인은 모름지기 아름답고 절절한 한 편의 시로 이따금 이리저리 부대끼며 사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안겨줘야 마땅할 일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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