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미술관’을 포기않는 사람들

발행일 2021-07-25 16:13:0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국립 이건희미술관 건립의 꿈이 대구·경북을 포함한 비수도권 국민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또 하나의 ‘비수도권 패싱’이란 쓰린 기억으로만 남을 공산이 크다. 지난 7일 황희 문체부 장관이 이건희미술관(국가기증 이건희소장품관)을 서울에 건립하겠다고 발표한 지 20일 가까이 지났다. 비수도권 국민의 염원을 짓밟는 폭거라는 비난이 어어졌다. 그러나 세상 많은 일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서 분노와 반발이 잦아들고 있다.

하지만 이건희미술관 유치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희미술관 대구유치 시민추진단’에 참여한 지역 36개 기관·단체 관계자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며 결기를 다지고 있다.

문체부는 이건희미술관 건립 후보지로 국립중앙박물관 인근 등 서울의 두 곳을 선정했다. 올해 내 최종 부지를 결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대구유치 시민추진단은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시도민들, 끝났다고 포기할까봐 두려워”

김형기 시민추진단장(경북대 명예교수)은 “대구·경북 시도민들이 이미 끝났다고 지레 포기할까봐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건희미술관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비수도권을 대상으로 한 공모 절차가 필수”라며 “지금은 그런 목표를 향해 비수도권의 힘을 한데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모로 가면 대구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이건희 컬렉션은 총 2만3천여 점에 이른다. 이 중 국내외 거장들의 근현대 미술작품은 1천488점이다. 김 단장은 “이 작품들은 반드시 비수도권에 이건희 근대미술관을 건립해 전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전적류(典籍類) 등의 문화재는 문체부가 추진하는 서울의 이건희소장품관에 남겨도 괜찮다고 설명했다. “보존과 장기간에 걸쳐 전문적 연구가 필요하다면”이란 단서를 단 현실적 대안이다. 이건희 컬렉션의 특성별 분리 보존·전시 방안이다.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문체부의 예정지 선정 과정은 납득할 수가 없다. 공론화나 공모절차 없이 비수도권 40여 개 지자체의 유치 제안을 묵살했다. 결정의 전위대 노릇을 한 이건희소장품 활용위원회는 위원 7명 중 6명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공정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대구유치 추진단은 26일 오후 시민궐기대회를 연다. 비수도권 연대 등 투쟁계획을 확정하고 시민들의 결연한 뜻을 모아 나간다. 여야 대선 주자들에게도 지방살리기 차원에서 이건희미술관 비수도권 건립을 공약으로 채택하라고 압박해 나갈 계획이다.

대구·부산·광주 등 비수도권 8개 시도 미협 지회장들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난 20일 성명서를 내고 “이건희미술관은 비수도권 공모를 통해 결정돼야 한다”며 서울건립 결정의 백지화를 요구했다. 영남권 5개 시도지사들도 “입지 결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공동대응 해나가기로 합의했다.

---대구·경북, 야성과 끈기 되찾는 계기 돼야

그러나 지역 정치인들의 활동에 대한 평가는 확연하게 엇갈린다. 김승수(대구 북구을·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지역의 입장을 대변하는 선봉 역할을 했다. 문체부에 지역 여론을 전달하는 동시에 국회 문체위에서 비수도권 유치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여왔다. 그가 문체위원이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평가를 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활동은 돋보였다. 이건희미술관 유치 운동을 강건너 불보듯 한 정치인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민추진단에서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동참을 요청했으나 대부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역 의원들이 나선다고 성사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지역 현안을 대하는 태도가 이래서는 안된다. 본분을 망각한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다. 지역 의원들은 지난해 가덕도신공항 저지투쟁 때도 소극적 대응으로 지탄을 받은 ‘전과’가 있다.

이건희미술관 유치는 지역의 염원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그들은 지역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반박조차 못하는 무기력이 습성화 돼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이건희미술관 유치운동이 대구·경북 특유의 야성과 끈기를 되찾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지국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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