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 위의 소설가/ 하창수

발행일 2021-07-21 14:08:5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 소설을 쓴다는 것의 의미 ~

…그는 정신감정을 받았다. 정육면체 나무토막 위에 정육면체 나무토막을 쌓아올리는 문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똑같은 정육면체 문제에 막혔던 마흔 쯤 된 여자가 떠올랐다. ‘간호사가 그 여자에게 초능력이 생겼다고 전했다.’ 폭소 소리에 잠을 깼다./ 소설가 한영수는 정신과 진료를 받은 후 초능력이 생겼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떤 형상을 보고 있으면 이미지가 문장으로 바뀌는 능력. 그의 소설은 그 이전과 확실히 달랐다./ 4년 전, 한영수는 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어떤 여자의 축하전화를 받았다. 그녀의 말은 황당하긴 했지만 묘한 매력이 있었다. ‘한 아이가 철로 위에서 죽었다. 두 레일이 만나는 지점까지 가보려 애쓰다가 기차에 치여 죽었다.’ 그가 언젠가 자기 얘기를 소설로 쓸 거라고 했다./ 그 이전에 한영수는 만취한 여자를 거리에서 조우했다. 그녀를 부축해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오바이트를 하고 난리를 쳤다. 결국 근처 여관으로 갔다. 그녀는 정신감정사라 했다. 뜬금없이 황당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니카라과 쿠데타 때, 정권을 잡은 장군이 대통령궁으로 들어가던 날이었다. 그 수행원 칼리프 대위는 똥이 마려워 화장실에 갔으나 똥이 입으로 올라왔다. 씻고 누웠지만 토할 것 같아 잠이 오지 않았다.’ 화가 난 한영수는 말을 끊고 여관을 뛰쳐나왔다. 바깥세상은 똥으로 변해 있었다./ ‘「전쟁과 평화」를 쓴 톨스토이와 시인 톨스토이를 아느냐? 몰랐다면 자숙하라. 톨스토이는 서론이고 이제 본론이다. 그는 1844년 프로이센에서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바그너에 심취했고 국적을 스위스로 바꿔 대학교수가 됐다. 이질, 편두통, 눈병 등 병력이 끊이지 않았다. 1888년 정신착란 증세까지 나타났다. 1900년 여름, 55세로 생을 마감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그녀의 이메일 내용이다. 니체. 악의적인 편집으로 보아 그녀는 정신분열증인 듯하다. 만취한 여자, 축하전화를 한 여자, 메일을 보내온 여자 등이 한 여자다. 지난 4년간 쓴 소설은 그녀의 얘기를 적절히 배열한 것이었다./ ‘초등학교 신입생이 담임의 권유로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의사 상담 전에 정신감정사가 테스트를 했다. 비정상일 확률이 크다. 마지막으로 기차와 철로의 같은 점을 물었다. 기차가 앞으로 가면 철로는 뒤로 가고, 기차가 뒤로 가면 철로는 앞으로 간다고, 아이는 다른 점을 말했다.’ 그녀가 보낸 메일이다./ 어느 날, 그녀의 전화가 왔다. 기차와 철로 중 어느 게 움직이느냐고 물었다. 기차가 움직이지만 기차를 움직이게 하는 건 철로다. 나무토막 위에 나무토막을 올려놓지 못한 것처럼 끝내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후 그녀와 연락이 끊겼다. 그는 최근 쓴 소설을 파일에서 삭제했다. 그는 빈 화면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소설은 비정상적인 초능력자의 이야기일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자기 경험에만 의존하는 자는 스스로를 죽이는 그림자 소설가다. 남이 해주는 이야기를 받아쓰거나 현실을 재구성하는 것으로 일시적으로 남의 눈을 끌 수 있겠지만 결코 오래 지속될 순 없다. 두 철로가 만나는 지점을 향해 가거나 무지개를 따러 하늘로 올라가야 할까. 먼 나라 쿠데타에서 입으로 똥을 토하는 구도는 그게 역겨운 배설물과 같은 반동이라는 뜻인가. 다가갈수록 답은 그만큼 멀어져가는 것만 같다. 미쳐야 미치는 걸까. 소설은 어쩌면 감성과 이성의 실로 직조된 옷감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답이 없는 게 답이다.

오철환(문인)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많이 본 대구뉴스

많이 본 경북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