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이건희 미술관, 이대로 서울로 가나

발행일 2021-07-21 13:59:5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정부의 가칭 ‘이건희 미술관’ 건립 후보지 결정에 대한 반발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일 대구삼성창조경제단지에서 권영진 대구시장과 장상수 대구시의회 의장, 강은희 대구시교육감, 그리고 대구시의회 역대 의장 및 시의원들이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칭 ‘이건희 미술관’ 건립 후보지로 서울 지역의 두 곳이 결정되자 곧바로 전국적으로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선정 배경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예술인들의 목소리와 함께, 국가사업의 정책 결정이 서울로만 쏠리는 이른바 ‘서울 일극 주의’에 대한 비판도 지방을 중심으로 고조되고 있다.

지방의 반발이 이처럼 커진 데는 무엇보다 후보지 결정이 아무런 공모 절차도, 토론회나 공청회도 없이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대구시를 비롯해 그동안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추진해 왔던 전국 40여 개 지자체가 지방 민심을 무시하는 ‘밀실 결정’이라고 반발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와 다르다며 그동안 입버릇처럼 내세웠던 게 지방분권과 국토균형발전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이건희 미술관 후보지 결정을 보며 지방에서는 배신감과 함께 현 정권의 도덕성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후보지 선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그 기준으로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가기증 이건희소장품 활용위원회(이하 위원회)’가 마련한 네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또 기증자의 의중과 기존 시설들과의 시너지효과 측면도 고려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문화·예술계에서는 우선 이 위원회의 구성과 그 위원들의 선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위원회가 마련했다는 원칙 네 가지도 문화계의 보편적 동의를 얻기 어렵고, 그마저도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잘못이 있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지역의 문화예술인과 지자체들은 지방의 유치희망 도시를 대상으로 공모 절차를 진행해 후보지를 재선정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또 문화예술계 일각에서는 기존의 이건희미술관 건립 계획 자체를 아예 백지화하고 이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문체부는 지난 14일 ‘기증품특별관 건립 기본계획연구’ 용역을 발주하는 등 기존 결정대로 절차를 진행할 방침임을 밝히고 있다.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 서울 용산·송현동 중 한 곳에 건립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기증 이건희소장품 활용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관심이 집중됐던 이건희미술관 건립 후보지를 서울 용산, 송현동 두 곳 중 한 곳으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활용방안은, 4월 고 이건희 회장의 유족 측이 문화재와 미술품 총 2만3천181점을 기증한 이후 문체부가 7명의 관련 전문가와 담당 공무원들로 구성한 ‘국가기증 이건희소장품 활용위원회(이하 위원회)’에서 마련한 것이다.

문체부는 특히 후보지 선정 배경에 대해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부지와 국립현대미술관 인근 송현동 부지가 최적지라는 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황 장관은 “위원회에서 총 10차례 논의를 거쳐 기증품 활용에 대한 주요 원칙을 정립하고 단계별 활용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앞으로 관계기관과의 협의, 위원회의 추가 논의를 거쳐 두 곳 중 한 곳을 최종 건립 부지로 결정하게 된다. 이와 별도로 지역문화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지원을 강화하는 동시에, 권역별 분포와 수요를 고려해 국립 문화시설 확충, 지역별 특화된 문화시설 지원 방안도 검토해 나갈 계획이다.

정부가 지난 7일 ‘이건희 미술관’ 후보지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부지와 국립현대미술관 인근 송현동 부지 2곳으로 결정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대구 등 전국은 이건희미술관 후폭풍

그러나 정부의 후보지 결정 이후 대구지역에서는 대구시를 비롯해 문화·예술계, 정치권,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각층에서 반발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공정하지 못했고 지방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수도권 중심주의’ 사고에서 나온 결정인 만큼 전면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건희미술관 유치를 위해 2천500억 원의 건립 비용 전액을 부담하겠다는 입장까지 발표했던 대구시는 문화분권과 국가균형발전에 역행한 결정이라며 이건희미술관 입지를 전면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대구미협은 ‘위원회’가 마련한 네 가지 원칙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첫째, ‘국민의 문화 향유 기회 확대를 위한 국가 기증의 취지 존중과 기증의 가치 확산’ 원칙에 대해서는 공공의 역사적 자산은 모든 국민이 고루 누려야 한다는 원칙이 우선 지켜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으며, 둘째, ‘문화적 융·복합성에 기초한 창의성 구현’ 원칙은 자치와 분권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정책 방향 틀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셋째, ‘전문인력 및 국내외 박물관과의 협력 확장성’ 원칙은 지방에서 활동하는 많은 미술연구가와 해당 인력의 전문성을 폄하하는 결과로 나타났다는 점을 지적했다. 넷째, ‘문화·산업적 가치 창출을 통한 문화강국 이미지 강화’라는 원칙 또한 결과적으로 지역문화 불균형을 더 심화시키는 결정이 나왔다는 점에서 우려했다. 지역의 문화·예술계도 정부 결정 무효화를 요구하며 대구미협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와 함께 대구지역 3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립 이건희미술관 대구유치 시민추진단’은 기자회견을 통해 공모 절차를 거쳐 이건희 미술관을 비수도권에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정치권도 문체부 결정을 비판했다. 김승수(대구 북을) 국민의힘 의원은 성명을 통해 ‘문체부가 계속 공식 답변을 회피해오다 희망 지자체들을 상대로 공모 절차도 없이 후보지를 서울지역 2곳으로 결정했다. 당장 이번 결정을 철회하고 차기 정부가 투명하고 공정한 공모 과정을 통해 입지 선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 결정에 반대하는 성명서와 입장문 발표도 잇따랐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장상수 대구시의회 의장, 강은희 대구시교육감, 그리고 대구시의회 역대 의장 및 시의원들은 지난 8일 대구삼성창조경제단지에서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또 영남권 5개 광역시가 참여한 영남권미래발전협의회도 5개 시장, 도지사 명의의 공동입장문을 내고 문체부 결정의 재검토를 요구했다. 특히 이건희미술관 유치를 추진했던 전국의 각 지자체는 가칭 ‘비수도권 건립 지자체 연대’를 추진하기로 하는 등 반발을 계속하고 있다.

전국 예술단체들의 연합 모임인 (사)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은 성명을 통해 ‘처음으로 등장한 대규모 국가 기증의 의미를 살리고 문화국가로 자리매김하기엔 너무나도 짧은 논의와 급작스러운 결정이다. 위원회를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폭넓게 개방하고 더 진중한 논의를 통해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준우 논설위원 겸 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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