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술을 마시면 근심걱정 사라지고, 두 잔 술을 마시면 신선이 되고. 석 잔 술을 마시면 학이 되어 하늘을 납니다.”

‘찾아가는 양조장’(2015년 농림부 지정), ‘명인 박재서 안동소주’를 찾았다. 안동시 풍산읍 6길 6, 산업단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전산관리시스템으로 전 생산라인이 운영되는 스마트팩토리 작업장과 명인소주 체험관, 그리고 안동소주박물관을 갖춘 현대식 기업이었다. 여느 양조장과는 한결 다른 모습이었다. 박재서 명인소주를 책임지고 있는 아들 박찬관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 박찬관 명인 안동소주 대표(왼쪽)가 자신의 부친인 명인 박재서옹과 안동소주를 배경으로 한 자리에 섰다.
▲ 박찬관 명인 안동소주 대표(왼쪽)가 자신의 부친인 명인 박재서옹과 안동소주를 배경으로 한 자리에 섰다.
술 마시는 사람 치고 ‘안동소주’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고급 소주의 대명사인 안동소주의 유래가 궁금했다.

ㅡ안동에서는 가문마다 독특한 재료와 방법으로 만드는 청주가 오래 전부터 전해져왔습니다. 지금도 안동에는 안동소주 특허를 가진 양조장이 십여 곳 가동되고 있지요. 권문세가들이 즐겼던 안동소주는 고려시대부터 전승되어 온 700년 전통의 우리나라 3대 명주 중 하나입니다. 맛과 향이 여느 소주보다 띄어나서 소주하면 안동소주를 떠올리게 되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옛 의학서적에 의하면 약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과 함께 상처에 바르기도 하고, 배앓이, 식욕부진, 소화불량 등의 약으로 활용하기도 했다고 전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1,600여종의 전통주 중에서 브랜드의 지명도와 애호가들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술이 안동소주이다. 알코올 농도 물경 45도! 독하면서 깊은 맛과 향을 간직하고 있어 애주가들의 인기를 누려오고 있는 안동소주는 주정에 물을 타서 만든 희석식 소주와는 다르게 100% 순수 쌀로 만든 정통 증류식 소주이다. 박재서 명인의 안동소주는 안동소주의 대표적인 브랜드이다. 향이 깊고 은은한 안동소주 본연의 맛을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통식품명인의 반열에 오른 박재서 옹, 그는 어떻게 안동소주와 만나게 되었을까?

조선 명종 때 안동부 동쪽 광산촌에 초당을 짓고 후진을 훈도하며 살았던 은곡 박진이란 선비가 있었다. 그는 정부인인 안동 권씨가 빚은 소주로 풍류를 즐겼다. 안동소주가 박씨 가문의 가양주가 된 계기이다. 그 제조비법이 면면히 전수되어 오던 안동소주는 박재서 명인의 조모 남양 홍씨에 이르러 인근 마을까지 명성을 얻는다. 시어머니의 양조비법을 전수 받은 어머니 영월 신씨는 어려서부터 소주 제조에 관심이 많았던 아들에게 안동소주의 제조비법을 일러준다.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았던 ‘제비원 소주’의 제조 명장이었던 장동섭씨에게서 양조비법을 전수받은 박재서 명인은 가문의 전통비법과 제비원 안동소주의 비법을 자산으로 1992년, 안동소주 제조면허 인가를 받아 안동소주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 명인으로 인정받은 박재서옹이 안동 명인소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명인으로 인정받은 박재서옹이 안동 명인소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통식품명인 제6호 박재서 옹은 안동에 세거해 온 반남 박씨 25대손이다. 가문의 500년 전통을 이어온 자부심을 잃지 않고, 은은한 향과 뒤끝이 깨끗한 명품 브랜드를 꿈꾸는 명인 안동소주의 제조비법이 궁금했다.

ㅡ막걸리를 만들어 소주를 내리는 2단 방식이 아니라 우리는 청주를 한 번 더 발효해 증류하는 3단 방식을 따릅니다. 누룩과 고두밥을 섞어 밑술을 만드는 과정을 세 차례 반복해 발효시켜 덧술을 만드는 이른바 3단 담금 방식입니다. 덧술을 옛 전통방식 그대로 소주고리에 증류시켜 눈물방울처럼 똑똑 떨어지는 술이 모여 맛이 깊고 깨끗한 명인안동소주가 탄생하지요.

◆장군의 꿈을 버린 아들, K팝의 유혹을 떨쳐버린 손자

희석식 소주는 데워 마시거나 얼음을 타서 마시면 그 맛과 향이 변하지만 증류주인 명인 안동소주는 온더록스로 마시거나 일본 소주 사케처럼 데워 마셔도 그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 있다고 한다. 은은한 향과 깊은 맛의 비결은 감미료나 첨가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지하 270m 천연암반수와 안동지역의 고품질 백미만을 재료로 사용하여 3단 담금과 100일 이상 숙성을 통해 화근내를 없애는 인내와 기다림의 공정에 있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명인안동소주 기능전수자 박찬관 대표는 경영학 박사답게 안동명인소주의 전망과 세계화 전략에 대해 주저 없이 말했다.

ㅡ옛 방식을 답습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시대의 변화를 읽고 그에 맞게 대처하는 법고창신의 자세가 전통을 지키고 보전하는 참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술 소비국인 우리나라에는 아쉽게도 위스키, 코냑, 보드카, 마오타이 등과 같은 나라를 대표할만한 술이 없습니다.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명성을 가진 술들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안동소주를 우리나라의 대표 술로, 세계적인 명주로 만들어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지키려 합니다.

▲ 장군의 꿈을 버린 박찬관 대표가 환하게 웃고 있다.
▲ 장군의 꿈을 버린 박찬관 대표가 환하게 웃고 있다.
2015년 농식품부가 지정하는 ‘찾아가는 양조장’에 선정된 명인안동소주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또 다른 문화상품이 되기 위해 선비 고을이자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알려진 안동지역의 음식, 문화 그리고 농산물과 연계하여 안동소주의 부가가치를 높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박재서 옹은 균일한 품질 유지, 아들 박찬관 대표는 생산과 마케팅, 미생물학을 전공한 손자는 소주 품질 개선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3대가 협업하여 공유한 목표를 향해 가업 전통을 잇고 있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2010~2011년 우리 술 품평회 2년 연속 최우수상, 2012년에는 최고 영예인 대상을 수상, 청와대 명절 선물로 납품하는, 연간 50억 매출의 알찬 기업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얼마나 많았을까?

장군의 꿈을 버린 아들, K팝의 유혹을 떨쳐버린 손자가 겪었을 인간적 고충도 고충이었겠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회사 설립 이래 24년간을 허덕이던 누적된 적자의 고충이었다. 고충이 컸던 만큼 가장 큰 기쁨도 적자가 흑자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며 밝게 웃었다.

ㅡ우연한 일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4년 한 네티즌이 ‘명인안동소주가 양주보다 낫다’라는 품평을 인터넷에 올려주었지요. 인터넷의 힘이 막강함을 실감했습니다. 누리꾼들이 앞 다투어 인증샷과 품평 소감을 공유하면서 갑자기 붐이 일어났습니다. 일어났다기보다 불어 닥쳤지요. ‘안동소주 대란’이란 검색어 앞 순위로가 뜰 정도였으니까요. 이를 계기로 7, 8개월 동안 엄청나게 팔려나갔습니다. 고질병처럼 누적되었던 적자가 일시에 흑자 전환되는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공장 확장을 서둘러야 했습니다. 때마침 삼성전자가 지원해주는 ‘스마트 공장 지원사업’에 선정돼 맞춤형 제작 지원이 가능해졌습니다. 스마트팩토리 작업을 통해 재고 전산관리시스템, 생산라인 공간 정리 등 안전하고 청결한 공장을 갖추고 생산량도 늘리는 행운을 얻게 되었지요. 세계적인 명품을 만들어 소비자의 사랑과 사회의 지원에 보답하는 일이 저희에게 주어진 임무이지요. 세계적인 위스키를 꿈꾸는 명인안동소주의 기대와 희망이 공장 한 켠 오크통에서 발효와 숙성의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 박재서 명인과 박찬관 대표가 전통주 제조 공장에서 나란히 앉있다.
▲ 박재서 명인과 박찬관 대표가 전통주 제조 공장에서 나란히 앉있다.
술이란 무엇인가? 박찬관 대표의 대답이 궁금했지만 그는 뜬금없는 물음에 웃음으로 답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에게 바다는 그냥 바다이듯이 술과 함께 사는 그에게 술은 그냥 술이었을 것이다. 세계적인 명품을 꿈꾸는 그가 생각하는 좋은 술은 어떤 술일까? 무엇보다 맛의 균일성이 중요하다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술에 대한 자연과학적 접근에 인문사회학적 배려가 빠진 것이 허전했다. 소비자가 처한 처지에 걸맞은 이야기를 가진 술, 이를테면 공무도하와 심청과 춘향과 임꺽정과 견우직녀와... 함께 마음을 나누며 마실 수 있는 술이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술이 없는 세상은 어떨까? 혼잣말처럼 물었다. 낙이 없겠지요. 그의 대답은 안동소주의 뒤끝처럼 개운했다.

◆술이란 무엇인가?...술과 함께 사는 그에게 술은 그냥 술

후한서 동이전(東夷傳)에는 우리민족은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한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지 삼한조에도 ‘노래와 춤을 즐기며 술 마시고 논다’는 기록이 보인다. 술 마시고 노래하는 풍류의 오랜 전통을 가진 우리 민족에게 다시 술이란 무엇인가? 자문해 본다. 한 잔 술을 마시면 근심걱정 사라지고, 두 잔 술을 마시면 신선이 되고. 석 잔 술을 마시면 학이 되어 하늘을 난다고 했으니. 그것은 신명을 돋우어 인환(人寰)의 일상을 살맛나게 만드는 신의 선물이 아닐까. 신이 준 선물이라 할지라도 삶의 낙과 활력이 되기 위해서는 술주[酒]자가 가리키듯 닭이 물을 마시는 것처럼 조금씩, 알맞게 마실 때에 한해서일 터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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