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말 길들이기/김정연

발행일 2021-07-22 14:19:2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눈앞에 몰려오는 말 떼가 있거든//그중에 실한 놈 낚아 타 일단 타, 천천히 고삐 당겨 속도를 늦추는 거야, 처음부터 다그치다간 말 앞에 무릎 꿇어, 호흡을 맞추며 얼마쯤 가다가 툭툭 이따금 박차도 가하는 거지, 아 참 그리고 고삐와 박차는 동시에 쓰지 마 말이 멈춰 버려, 한참을 어르다 보면 손끝이 찌릿한 게 느낌이 올 때가 있어 그때 달리는 거지//말처럼 쉬울 것 같아? 도망갔어, 내 시는!

「서정과현실」(2020, 하반기호)

김정연 시인은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꿈틀’이 있다.

‘야생 말 길들이기’는 사설시조다. 초장과 종장은 정격을 유지하고 중장은 많이 길어진 형태다. 일명 장시조라고도 부른다. 조선 후기에 등장한 사설시조는 평시조의 기본형인 초·중·종장의 형식을 유지하면서 평시조와 달리 초·중장이 제한 없이 길며 종장도 길어진 시조를 말한다. 정제된 평시조와는 달리 사설시조에서는 형식의 파격을 통해 감정이 표현되는데 이는 형식의 아름다움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황이나 감정을 더욱 절실하게 표현하기 위해 상황이나 대상을 열거, 반복해 제시하면서 길어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무리 길어질지라도 시조 고유의 질펀한 가락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야생 말 길들이기’는 그런 점에서 볼 때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눈앞에 몰려오는 말 떼가 있거든, 이라는 초장은 이미 화자가 무언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은연중 느끼게 한다. 이어서 그중에 실한 놈 낚아 타 일단 타, 천천히 고삐 당겨 속도를 늦추는 거야, 처음부터 다그치다간 말 앞에 무릎 꿇어, 호흡을 맞추며 얼마쯤 가다가 툭툭 이따금 박차도 가하는 거지, 아 참 그리고 고삐와 박차는 동시에 쓰지 마 말이 멈춰 버려, 한참을 어르다 보면 손끝이 찌릿한 게 느낌이 올 때가 있어 그때 달리는 거지라고 숨 가쁜 전개를 보인다. 눈앞에 말 떼는 달리는 말이기도 하고 떠오르는 말이기도 하다. 화자는 실한 놈을 낚아, 라고 말한다. 그리고 타라고 한다. 고삐를 당겨서 속도를 늦추기를 당부한다. 잘못하다가는 말 앞에 혹은 언어 앞에 무릎을 꿇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호흡을 고르다가 얼마쯤 가서는 이따금 박차를 가하라고도 한다. 그런데 고삐와 박차를 동시에 쓰지 말 것을 요청한다. 내닫던 말이, 생동하던 언어가 멈춰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참 어르다가 손끝이 찌릿할 때 그때는 달려가라고 주문한다. 종장은 종장으로서의 품격과 의미의 축약이 잘 결집돼 있다. 말처럼 쉬울 것 같아?, 라는 질문에서 달리는 말처럼 혹은 우리가 쓰는 일상의 말처럼 쉽지 않음을 번쩍, 일깨운다. 그래서 도망갔어, 내 시는!, 이라는 후구가 맨 끝자락에 놓인 것이다. 이처럼 ‘야생 말 길들이기’는 사설시조로 쓴 시론이자 인생론이다. 시인의 장기가, 시적 특장이 잘 형상화된 작품이다. 사설시조의 또 다른 모델이 될 만하다.

그는 단시조 ‘출구’에서 문틈을 비집고 든 풍뎅이 한 마리가 달군 솥에 콩 볶듯이

좁은 방 휘젓다가 창문을 날파람나게 들이박는다, 너처럼, 이라고 노래한다. 종장 둘째마디에 쓰인 바람이 일 정도로 아주 빠르게 움직인다, 라는 뜻을 지닌 날파람나게, 를 적절하게 써서 시의 맛을 한껏 돋운 점이 눈길을 끈다. 또한 ‘출구’가 제시하고 있는 정황은 예사롭지가 않다. 삶의 한 단면을 적실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연 시인은 시조의 본령인 단시조에도 충실하면서 장르의 확장인 사설시조에도 능한 솜씨를 보인다. 그 점이 무척 인상적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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