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기행<123>대성의 효도

발행일 2021-07-19 08:35:5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대성은 시주하고 재상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장수사·불국사·석굴암을 지어



불국사는 김대성이 경덕왕 때 부모님을 위해 건축했다고 삼국유사에 설화로 전해진다. 삼국유사에는 경덕왕의 아들을 점지하게 한 표훈대덕이 주석했다고 나온다. 보물 1744호로 지정된 대웅전.


많은 학자가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나라에 대한 충성보다 부모에 대한 효를, 부모에 대한 효보다 불교적 선을 더욱 큰 가치로 생각했던 것 같다는 연구보고서를 쓰고 있다. 삼국유사 기록에도 부모에 대한 효보다 출가해 불교적 선을 수행하는 일을 우선했던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있다.

일연스님의 효행도 삼국유사에 나타난 내용과 같이 나라에 대한 충보다 부모를 봉양하는 효행을 우선하고, 또 그에 앞서 불교의 경전을 익히고 강론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일연스님은 나라의 일을 보는 국사에 봉해졌지만 결국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군위로 내려와 인각사에 주석하며 가지산문을 열어 백성들에게 불교의 법문을 널리 알리는 일에 매진했다.

대성의 효도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번 편에서 그러한 고려시대의 사상적 이념을 통해 신라시대 실생활을 설화로 전하고 있다.

대성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진 재산을 시주하고, 그로 인해 재상의 아들로 다시 태어났다. 커서 사냥한 곰을 추모하기 위해 장수사를 세우고, 전생과 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과 불국사를 창건했다. 신라시대 효와 불교에 대한 선의 개념을 더듬어 보게 한다.

다보탑과 석가탑은 국보 20호와 21호로 나란히 지정됐다.


◆삼국유사: 대성이 전생과 현세의 부모에게 효도하다

모량리의 가난한 여인 경조에게 아이가 있었는데 머리가 크고 이마가 평평한 것이 마치 성과 같아서 이름을 대성이라 했다. 집이 가난해 생활할 수가 없어서 부자인 복안의 집에 품팔이를 했는데 그 집에서 나눠 준 약간의 밭으로 옷과 먹을 것을 마련했다.

이때 덕망 있는 승려 점개가 흥륜사에서 육륜회를 베풀고자 복안의 집에 와서 시주를 권하니 복안이 베 50필을 시주했다.

점개가 주문으로 축원하기를 “신도께서 보시를 좋아하시니 천신이 항상 보호하고 지키시라. 하나를 보시하면 만배를 얻으리라. 편안함과 즐거움을 누리고 오래도록 사시라”고 말했다.

대성이 이 소리를 듣고 급히 뛰어들어가 그의 어머니에게 “제가 문간에서 스님이 외우는 소리를 들으니 한번 보시하면 만배를 얻는다고 말씀하더이다. 생각해보니 저는 전생에 좋은 일을 하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곤궁한데 오늘 또 보시하지 않는다면 내세에는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고용살이로 얻은 밭을 법회에 시주해서 후일의 과보를 도모함이 어떻겠습니까”고 묻자 그의 어머니가 좋다고 했고, 대성은 점개에게 밭을 보시했다.

불국사 앞에는 특이하게 당간지주 두 쌍이 나란히 서 있다. 서쪽의 당간지주 사이에는 둥근 받침대가 독특한 형식으로 보인다. 신라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446호로 지정돼 있다.


얼마 안 되어 대성이 죽었다. 이날 밤 나라의 재상 김문량의 집에서 “모량리의 대성이란 아이를 네 집에 맡기겠다”는 하늘의 소리가 들렸다. 집안 사람들이 깜짝 놀라 사람을 모량리에 보내 알아보니 대성이 과연 죽었는데 죽은 그날이 하늘에서 외치던 날과 같은 때였다. 그때부터 태기가 있어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왼손을 쥐고 펴지 않다가 7일 만에야 폈는데 대성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진 금간자가 있어서 이름을 또 대성이라 짓고 그의 예전 어머니를 이 집에 모셔와 함께 봉양했다.

대성은 자라서 사냥을 좋아했다. 어느 날 토함산에 올라가 곰 한 마리를 잡아 산 아래 마을에서 유숙했다. 꿈에 곰이 귀신으로 변해 시비를 걸며 “너는 어찌하여 나를 죽였느냐? 내가 도리어 너를 잡아먹으리라”고 했다.

대성이 두려워 떨면서 용서를 빌었다. 귀신이 “나를 위하여 절을 지어 줄 수 있느냐”고 묻자 대성이 그러하겠다고 맹세했다. 꿈에서 깨어보니 땀이 흘러 이부자리를 적셨다. 이로부터 사냥을 하지 않고 곰을 잡았던 자리에 곰을 위하여 장수사를 세웠다.

김대성이 곰을 사냥하고, 꿈에서 곰을 만나 곰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다는 장수사터의 삼층석탑. 그 이후로 김대성은 사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마음에 감동되는 바가 있어 자비로운 발원이 더욱 독실해졌다. 이에 현생의 양친을 위해 불국사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를 창건하여 신림과 표훈 두 성사를 청해서 머무르게 했다.

아름답고 큰 불상을 세워 부모가 길러 준 노고에 보답했으니 한 몸으로 현생과 전생의 부모에 효도한 것은 옛날에도 또한 듣기 힘든 것이었다. 착한 보시의 영험을 어찌 믿지 않겠는가.

장차 석불을 조각하고 하나의 큰 돌을 다듬어 감실의 뚜껑을 만드는데 돌이 갑자기 세 조각으로 갈라졌다. 대성이 분하게 여기다가 얼핏 잠이 들었는데 밤중에 천신이 내려와 다 만들어 놓고 돌아갔다.

대성이 막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남쪽 고개로 급히 올라가서 향나무를 사르면서 천신을 공양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향고개라고 불렀다. 불국사의 운제와 석탑 그리고 돌과 나무에 조각한 솜씨는 경주의 여러 절 중에서 이보다 더 나은 곳이 없다.

옛 향전에 실린 것은 이상과 같으나 절 안의 기록에 의하면 경덕왕대에 대상 대성이 천보 10년 신묘(751)에 불국사를 짓기 시작했다. 혜공왕 대인 대력 9년 갑인(774) 12월2일에 대성이 세상을 뜨자 나라에서 이를 완공시켰다. 처음에 유가대덕 항마를 청해 이절에 머무르게 하니 이를 계승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는 옛 기록과 같지 않으니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다음과 같이 찬미한다.

‘모량에 봄 지나 밭 세 묘를 시주하니/ 향고개 가을 와 만금이 얻어지네/ 어머님 한평생에 가난과 부귀 누렸으나/ 대성은 한 꿈에 전생 이승 오고갔네.’

석굴암은 토함산 칠부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10분 정도 걸어야 만날 수 있다. 석굴암 입구의 산문.


◆새로 쓰는 삼국유사: 대성의 효도

신라 성덕왕 때 재상 김문량은 아들이 없어 흥륜사에 전답 백마지기를 시주하며 백일기도를 드렸다. 김문량의 아내가 백일기도를 드리는 마지막날 엎드린 채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을 꿨다. 부엌에서 밥을 짓는데 앞마당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궁궐만한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놀라 눈을 떴다.

재상의 아내가 깜짝 놀라 일어났는데 꿈이 너무 생생했다.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내가 재상에게 꿈 이야기를 했더니 “큰 인물을 얻을 꿈”이라며 입단속을 하라고 당부했다.

곧 김 재상의 아내에게 태기가 있고, 아홉 달이 지나 아이를 낳았다. 머리가 유달리 큰 아들이었다. 아이의 등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큰 별이 그려져 있었다. 별은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사라지고 가끔 흥분하거나, 울면 별무늬가 드러나곤 했다.

석굴암으로 들어가는 길은 포장하지 않은 순수한 흙으로 만들어진 숲길이다.


그래서 아이 이름을 대성(大星)이라고 지었다.

대성은 하루가 다르게 빨리 성장했다. 일곱 살이 됐을 때 벌써 어른들의 키만큼 자라 어른을 능가하는 힘을 자랑했다. 글을 깨우치는 속도도 빨라 아버지가 일러주는 책은 한 달이 지나기 전에 너덜하도록 읽고 뜻을 깨우쳤다.

대성은 열 살이 지나면서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은 물론 어른들의 담화에도 넌지시 끼어들어 논쟁하는 방향을 제시해주며 어려운 문제에 해답을 찾아주기도 했다. 어느덧 어른들도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어린 대성을 찾아 물었다.

대성은 일찍부터 아버지가 추천해주는 스승을 만나 창과 칼, 활 등의 십팔반 무예에 정통해 열 살이 넘으면서 특출한 무인의 기질을 보였다.

일제강점기와 1962년부터 1964년 사이 석굴암을 수리할 때 교체된 신라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석재들.


그러나 대성의 아버지 김문량은 뛰어난 아들이 궁중의 싸움에 휘말려 제대로 뜻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희생될 것을 우려해 병을 핑계로 아들의 바깥출입을 막아버렸다. 영문도 모른 채 대성은 아비의 엄명에 따라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답답함을 해소하는 한편 몸을 단련하기 위해 토함산으로 올라 사냥을 즐기며 무술을 연마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성은 산더미 같은 큰 곰을 만났다. 어렵게 활을 쏘아 곰을 사냥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곰이 워낙 커 집으로 옮겨오지 못하고, 곰을 잡은 자리에서 누워 쉬었다.

대성이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네가 사냥한 곰은 산을 지키는 수호신인데 네가 잡았으니 댓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며 호통을 쳤다. 대성이 깜짝 놀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그러자 “사당을 지어 곰을 위로하는 제를 올릴 수 있게 하고, 평생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일을 하라”고 답했다.

국보 제24호로 지정된 경주 석굴암 석굴. 석굴 앞에 지어진 누각의 지붕이 큰 바위들로 지탱되고 있다. 석굴은 직사각형의 전실과 복도를 지나 원형의 주실로 꾸며졌다. 화강암으로 조성한 본존불을 둘러싸고 금강역사, 사천왕상, 팔부신중, 십대제자, 십일면관음보살 등 30여구의 조각상이 뛰어난 예술성을 자랑하고 있다.


대성은 일어나 곰곰이 생각에 젖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곰을 위해 장수사를 지었다. 장수사 입구에는 사천왕상을 세워 부처와 산을 지키는 일을 하도록 했다.

대성은 그날부터 사냥을 그만두고, 불법에 심취했다. 불심이 깊어갈수록 대성은 자신을 위한 공부가 아닌 백성들의 평화를 위한 불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불국사와 석굴암을 짓기로 결심했다.

불국사는 남녀노소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대중사찰로 짓고, 석굴암은 공부가 깊은 스님들을 초청해 불법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연구하고 수련하는 암자로 활용하게 했다.

불국사와 석굴암에 대한 활용도에 대해 상세하게 적은 기록을 경덕왕에게 바치고, 대성은 석굴암이 완성된 그해 본존불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으로 조용하게 입적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 해석은 고운기의 ‘삼국유사’, 이범교의 ‘삼국유사의 종합적 해석’ 등을 참고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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