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식 교수
▲ 김준식 교수
진료실에 8개월 된 어린 아이를 데리고 애기 엄마가 찾아왔다. 시험관 아기로 아주 귀하게 얻은 아이인데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자주 깨어나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곧 육아휴직을 끝내고 직장에도 복귀해야 하는데 엄두를 낼 수 없다고 하소연을 하면서 눈물까지 흘렸다. 자신은 아이 때문에 밤새 잠 한숨 자지 못해 고생하는데, 직장 출근을 핑계로 다른 방에서 편하게 잠을 자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불만도 배어 있다.

진찰과 문진을 통해 문제는 어린 아이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엄마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린아이가 민감하고 조금은 까탈스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까, 밤에 자다가 조금만 몸을 뒤척여도 젖병을 물리거나 바로 토닥거려 잠을 재우곤 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면주기는 60분에서 90분으로 렘수면과 비렘수면으로 구성돼있어 누구나 잠시 잠에서 깰 수 있다. 보통의 아이들은 손을 입에 대거나 하면서 스스로 다시 잠을 잘 수 있는데, 어머니가 우유병과 토닥임으로 잠을 자도록 강화를 했기에 스스로 다시 잠을 들 수 없었던 것이다. 애기엄마에게 아기를 바로 달래지 말고 시간을 두고 달래도록 시간표를 짜주고 수면위생을 위한 교육을 한 다음에 아이는 다시 잘 자게 됐다.

이런 아이를 그대로 두면 먹는 것도 문제가 생기고, 발달이 지연되면서 여러가지 행동의 장애가 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아이들이 성장이 지연되고 발달이 떨어지는 경우는 여러가지 다양한 원인들이 있다. 아주 드물지만 다운증후군과 같은 염색체 이상이나 뇌손상에 의한 뇌성마비 등의 원인들도 있지만, 앞의 예에서 본 것처럼 환경적인 요인들도 많이 있다.

독일 뮌헨의 사회아동발달센터(Sozial Paediatrischen Zentrum·SPZ)에는 놋쇠로 된 조그마한 배가 조형물로 자리하고 있다. 노아의 방주처럼, 모든 어린아이가 잘 성장하고 발달하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다짐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독일에서는 어린 아이의 발달이 늦어지면, 어린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지 당연하게 살펴보아야 하지만, 그 가정의 다른 문제가 있는지도 확인한다. 혹 어머니에게 산후우울증이 있어 어린 아이와 상호작용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부부가 함께 육아에 참여하는지 주의 깊게 살피고 교육한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가 그 가정만의 문제인지, 아니면 사회의 문제로 제도 개선이 필요한지 조사해 대안을 찾는다. 조기에 문제점을 찾아 부모를 교육 하거나, 치료를 시행하게 되면 치료 효과가 높을 뿐만 아니라,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로 인해 고통 받는 가정을 회복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뮌헨대학교 어린이병원의 소아과 교수였던 테오도르 헬브뤼게(Theodor Hellbruegge)박사는 교수직을 던지고, 한 명이라도 발달장애에서 회복되는 아이가 있다면 자신의 삶을 바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뮌헨에 사회아동발달센터를 세웠으며, 독일에서는 이 모델로 120여 개의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아동발달센터의 방문교수로 독일에서 1년 간 연수를 했을 당시 독일에서 문제가 심각했던 애착장애 등 가정의 문제로 발달이 지연되는 어린 아이들이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난임과 남들보다 조금 빨리 부모를 만난 ‘이른둥이’들이 늘어나고, 사회적 스트레스가 증가하면서 육아환경은 점점 더 악화되는 현실이다. 과거에는 마을에서 아이를 키웠다면 지금은 핵가족으로 어린 아이들의 접점 포인트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언어 발달이 늦거나,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도 확연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1960년대에는 한 해 100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는데, 지금은 OECD국가 중 출산율이 0.84로 가장 낮아 출생자는 역대 최저인 27만5천815명으로 급감했고, 사망자는 30만7천764명으로 증가해 사상 처음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인구절벽이 가시화됐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된 저출산을 막을 방법은 마땅치 않지만, 태어난 아이들만이라도 우선 건강하고 밝게 자라고, 행복한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줄 책임이 정치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다.

김준식 교수(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소아청소년과)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