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비싼 편의점 도시락을/캔 맥주랑 먹으며 즐기는 시간/아이 둘 낳고/그 두 녀석 잠든 모습 보는 시간/달달한 주전부리 먹으며/내 좋아하는 드라마 시청하는 시간/고요한 오전의 커피 한잔/직장의 바쁜 시간/믹스커피 한잔 뽑아 들고/탕비실에 숨어 홀짝거리는 시간/회사의 프린터로/내 필요한 거 뽑아내는 시간/회사에서 내 노트북과 스마트폰을/완충하는 시간/가까운 산길을 맨발로 걷는 시간/말랑말랑한 아기의 발 만지며/냄새를 맡아보는 시간/개와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는 시간/시장 골목에 서서/그토록 먹고 싶었던 닭발을/원 없이 먹는 시간/몹시 추운 날/따뜻하게 데워진 비데에/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멍한 시간/클래식 음악 잔잔히 틀어놓고/일하는 시간/내 아코디언 연주가/실수 없이 마무리 앞두고 있는 시간/이 소소하고도 확실한/행복의 시간

「신종족」 (시와에세이, 2021)

요즘 신종족이 대세다. 신종족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조곤조곤 맛깔나게 들려준다. 시를 읽으면 신종족의 정체가 소상하게 드러난다. 현대를 살아가는 신종족의 실체를 해학적 시각에서 적나라하게 해부하면서 날카로운 비수를 숨겨두는 일도 잊지 않는다. 개인주의에 철저하고 찰나주의와 확실성의 포획에 망설임이 없다. 복잡하고 어려운 건 질색이고 단순하고 평이한 삶을 추구한다. 간섭엔 맹렬히 저항하고 누가 뭐라 해도 자기식대로 산다.

신종족의 특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신조어가 워라벨과 소확행이다. 그 외에도 가심비, 1코노미 등이 있지만 모두 다 그 문맥은 상통한다. 워라벨은 Work & Life Balance의 약칭으로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여가가 직장선택의 중요한 변수로 부상한 것도 워라벨의 영향이다. 소확행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일상에 널려있는 소확행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는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의 실천적 진화로 봐도 무방하다.

신종족과 대척점에 있는 종족은 어쩌면 꼰대족이다. 꼰대는 권위주의 가치관을 가진 이들을 조롱하는 말이지만 이젠 전통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으로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실리보단 명분에 관심이 많고 현실적 이해를 넘어 담대한 이상을 추구하는 편이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안락한 삶을 내려놓고 장래의 장밋빛 인생을 꿈꾸며 눈앞의 확실한 이득을 하찮게 여긴다. 이중적 태도를 견지하지만 홍익인간 정신과 공공의 가치를 앞세우고, 비록 싫더라도 때에 따라 사익을 희생할 줄 안다. 표리부동할지라도 선공후사를 자연스레 수용한다.

소확행을 소탐대실이라며 외면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소확행만 추구해선 인류의 성장과 지속가능한 행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동선과 소확행은 배타적 관계가 아니다. 상호 보완적이고 상생하는 관계다. 공동선을 상위 레벨에 두고 하위의 디테일한 부분에서 소확행을 추구하는 중용의 길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현재 중심 대 미래 지향, 개인주의 대 전체주의라는 대립 구도를 깰 필요가 있다. 양자택일하는 편식이 아니라 이들을 버무려 영양가 있는 균형 잡힌 식단을 지향해야 한다.

나무만 보고 숲을 간과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사소한 데 정신이 팔려 정작 더 소중한 가치를 놓쳐서는 안 된다. 소확행도 중요하지만 큰 줄기도 봐야 한다.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통찰하게 하는 반어와 풍자가 행간에 읽힌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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