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댕이쳐진 비수도권의 염원

발행일 2021-07-11 15:21:2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정부가 2천600만 비수도권 국민의 염원을 내동댕이쳤다. 대구 등 40여 개 지역의 국립 이건희미술관 유치희망은 일거에 무산됐다. 비수도권은 2등국민 취급을 받았다. 형식에 그치더라도 최소한 입지공모 절차는 거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마저도 건너뛰었다. 행정의 폭거다. 문재인 정부가 외쳐온 ‘지역균형발전’은 또 한번 공염불에 그쳤다.

문화의 지방분권은 지방생존의 첫걸음이다. 망국적 서울집중을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미 서울은 문화향유 수준이 비수도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국내 최고 수준의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등이 집중돼 있다. 지방사람은 같은 세금을 내면서도 서울에 가지 않으면 제대로 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관람할 기회가 없다. 정부는 이런 현실을 애써 외면했다.

---이건희미술관, 가이드라인이 현실로

정부가 이건희미술관(기증관) 후보지로 국립중앙박물관 옆과 국립현대미술관 인근 등 서울의 2곳을 전격적으로 선정했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지난 7일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에서 주요 원칙을 정립하고 단계별 활용방안을 마련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황 장관이 지난 5월21일 언급한 ‘접근성’과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기준’이 우려한 대로 가이드 라인이 됐다. 문체부는 비수도권의 반발이 거세지자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위원회에 참여한 전문가라는 사람 몇 명의 밀실 협의를 앞세워 비수도권의 염원을 뭉갰다. 그들 7명 중 6명이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었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공정에 반대되는 불공정은 바로 이런 것이다.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불공정이다. 지방차별이 바로 불공정이다. 민간기업도 아닌 국가기관이 국립 미술관 건립에 효율을 앞세워 국가균형발전을 내팽개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지역균형발전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키워나겠다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는 것 같다.

문체부의 논리대로라면 비수도권에는 제대로 들어설 수 있는 것이 없다. 많은 사람이 관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처음부터 비수도권을 배제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미술관 나들이가 여행의 목적이 되는 시대다. 미술관을 매개로 문화와 관광, 산업을 묶어 지역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접근성도 마찬가지다. 고속도로가 사통팔달 이어지고 KTX가 전국 곳곳을 누비는 시대다. 접근성 운운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비수도권 대도시의 접근성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유관 전문기관이 적다는 것도 이유가 안된다. 출장을 가면 된다. 유관기관 분원을 만드는 방법도 있다.

비수도권 사람들은 이건희미술관이 자기 지역에 건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비수도권 유치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이건희미술관이 수도권 집중을 해소할 하나의 실마리가 돼야 한다는 동병상련의 소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남권 5개 시도지사가 참여하는 영남권미래발전협의회가 입지 선정을 지방 공모절차로 해줄 것을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역 균형발전·문화격차 해소 ‘공염불’

얼마전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대법원을 대구로 옮기자는 제안을 했다. 선거를 앞둔 민심잡기용 제안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여당 사람들도 비수도권이 고사 직전이라는 사실을 알고 대안을 제시한다. 그런데 문체부는 고개를 돌렸다. 이해할 수 없는 행태다.

비수도권 국민들은 이건희미술관 입지 선정의 불공정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해야 한다는 주장이 봇물을 이룰 것이다.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와 ‘국가 균형발전’은 어디로 갔나. 비수도권의 물음에 문재인 정권은 답해야 한다.

영호남 지역 갈등, 세대 간 갈등에 이어 지방과 서울 간 갈등을 촉발시키려 작심하지 않은 이상에는 이번과 같은 결정을 할 수 없다. 국가경영에는 효율이나 경제성만이 전부가 아니다. 이건희미술관은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기준과 절차에 의거해 입지를 다시 선정해야 한다.

지국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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