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랑데부 ~

…아내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세 달 동안 절망과 슬픔에 휩싸여 넋을 놓고 살았다. 아내가 죽은 후 냉장고 문을 처음 열었다. 악취가 났다. 냉장고를 청소하고 내용물을 모두 폐기했다. 아내가 좋아하던 커피만 남겨두었다. 사귄 지 백일 만에 결혼했다. 연애기간은 짧았지만 사랑은 깊었다. 애는 없었지만 근 3년 동안 하루하루가 축복이었다. 아내는 갔지만 아직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만 같다./ 이젠 잊어야 할 때다. 이 집과 가구를 떠나면 잊을 것 같다. 아내의 손때 묻은 가구를 처분하고 기숙사로 들어갈 계획이다. 그 전에 아내가 숨겨둔 마지막 선물을 찾아보았다. 사고 전날, 아내는 선물을 숨겨두었다며 찾아보라고 했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탓에 그날 밤에 찾지 못한 것이다. 샅샅이 뒤졌으나 찾지 못했다. 상태가 양호하여 가구는 순조롭게 팔렸다. 가구가 나가고 난 빈자리가 의외로 허전했다. 흰 소파가 마지막으로 남았다. 색깔이 밝다는 이유로 주저한 결과였다. 서랍장이 나갈 때 집 앞에서 만난 여자가 소파에 관심을 보였다. 여자는 30대 중반 쯤 보였다. 아내가 환생한 느낌이 드는 여자였다. 아내가 쏟은 커피의 얼룩도 개의치 않고 소파를 가져갔다./ 이혼 직후, 여섯 살 난 딸이 어린이집 통학버스를 타고 오다 트럭에 받혀 이승을 떠났다. 교사 한 명과 운전기사도 함께 숨졌다. 시간이 가도 슬픔이 치유되지 않았다. 불면의 밤이 이어졌다. 후배의 권유로 터키의 네크로폴리스에 갔다. 그 죽음의 도시에서 홀로 여행 온 중국여자를 만났다. 무슨 사연인지 중국여자는 석관 속에 들어가 울었다. 여자도 그 석관에 들어가 누워봤다. 어딘가로 빠져드는 느낌이랄까. 그 후 서로 마음이 통해 번호를 교환했다. 새벽에 그 중국여자의 전화를 받았다.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가슴이 뚫리는 듯했다. 창밖을 내다봤다. 담배를 문 남자가 맞은편 빌라 앞에 보였다. 안면 있는 실루엣이었다. 선생님 집에서 놀다왔다던 딸의 얘기가 떠올랐다. 그 빌라다. 하얀 소파가 예뻤다고 사달라고 졸랐었지. 비밀의 실마리를 찾은 양 가슴이 뛰었다./ 소파에서 발견한 걸 전해주기 위해 여자가 그의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아내의 선물이 소파에 있은 모양. 뭔지 궁금했다. 여자는 그의 아내와 함께 사고 당한 애의 엄마라고 말했다. 소파 아래쪽에 ‘선생님♡’이란 낙서를 한 애였다. 여자는 태아사진을 넘겨주었다. 아뿔싸! 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내가 꿈속에 나타났던 것도 그 때문일까. 눈물이 쏟아졌다. 여기가 죽은 자들의 도시일까. 중국여자한테 전화가 왔으나 여자는 받지 않았다.…

사랑이 깊으면 상실의 아픔도 그만큼 깊다. 사랑을 잃은 연후에 그 소중함을 비로소 안다. 슬픔이 너무 크면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두 남녀의 얘기다. 남자는 사랑하는 아내를 졸지에 사별하고 정신 줄을 놓고 산다. 집과 가구를 떠나면 잊혀 질까. 잊으려할수록 마음은 더 허하다. 여자는 어린 딸을 잃고 삶의 의욕마저 사라진 상태로 하루하루를 괴로워한다. 네크로폴리스에 뭔가 있을까 해서 가본다. 누군가와 사별한 중국여자를 만나 슬픔을 위로받긴 하지만 2% 부족하다. 마침내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역지사지를 통해 완전 공감하고 쌓인 슬픔을 눈물로 녹여낸다. 슬픔을 슬픔으로 치유하려는 듯. 사무친 아픔을 치유하는 것은 동병상련과 아픔에 대한 진정한 공감이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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