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경북에서 원전 문제는 얘기 꺼내기조차 조심스러운 사안이다.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피해가 오롯이 경북에 전가되면서 울진, 영덕, 경주 등 경북 동해안지역은 경제적 피해를 넘어 지역사회 전체가 큰 상실감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세 지역 자치단체와 주민들은 정부를 상대로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한편, 탈원전 정책을 현실 여건에 맞게 수정해 줄 것을 거듭 요구해 왔지만 정부는 여태껏 무반응으로 일관해 왔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급기야 경북도가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 추진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섰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최근 취임 3주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탈원전 정책으로 울진, 영덕 지역이 막대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보고 있다. 전문기관에 피해 용역조사를 의뢰했는데 그 결과에 따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탈원전 정책과 관련해 지방자치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추진하는 것은 처음으로, 향후 전개 과정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은 이미 국내 원전생태계의 붕괴로까지 이어지면서 그 피해가 경북지역뿐 아니라 관련 업계, 학계 등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 집권당과 정부 내에서도 탈원전 정책에 대한 시각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5월 미니 원전인 ‘소형 모듈원자로(SMR)’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김부겸 국무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원전은 앞으로 60년간 우리 에너지원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원전 문제로 그동안 이래저래 속을 끓여왔던 지역민들은 지금 이런 움직임조차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변화 조짐이라고 기대할 만큼 절실한 상황이다.

◆ 더 커지는 탈원전 반대 여론

영덕군은 최근 정부의 원전지원금 380억 원 회수 절차 추진에 비상이 걸렸다. 380억 원은 영덕이 2012년 천지원전 예정 구역으로 지정된 뒤 산업부가 주민지원사업을 위해 2015년까지 지원한 예산이다.

산업부는 올해 4월 중순께 영덕군에 원전지원금 원금과 이자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해달라는 공문을 보낸 데 이어 그달 하순께는 원전지원금 회수 여부를 결정하는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심의위원회’에 낼 의견서를 제출해 줄 것을 영덕군에 요구했다. 꼼짝없이 380억 원 회수 결정만을 기다려야 할 처지가 된 영덕군은 부랴부랴 지역 국회의원과 경북도에 도움을 요청했다.

영덕군에 따르면 원전지원금 380억 원은 2012년 특별회계에 편성돼 산업부 승인까지 받았지만 당시 주민들의 원전 건설 반대가 심해지자 군의회에서 전액 삭감했던 예산이다. 그러나 군에서는 애초 계획됐던 주민지원사업을 미룰 수 없어 지방채를 발행해 이를 충당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그 지원금이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영덕 주민들은 “원전 유치 과정에서는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라져 싸우느라 주민들이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는데, 지금은 원전지원금을 다시 내놓으라는 정부 때문에 주민들이 골치가 아프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울진에서는 2020년 12월 신한울원전 3, 4호기 전면 백지화 결정 이래, 원전 건설 재개를 촉구하는 서명운동과 릴레이 집회 등으로 주민들이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울진범군민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단체에서는 80만 명의 서명이 담긴 청원서를 정부에 제출했고, 청와대 앞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는 주민들의 릴레이 집회가 열렸다.

주민들은 “지금까지 그토록 반대 의견을 냈는데도 귀와 눈을 닫은 정부였다. 솔직히 더 이상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끼리는 법적 대응 등 더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많이 나온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이런 지역 분위기와 함께, 탈원전 정책에 대한 국민 여론에도 변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갤럽의 올해 1월 전국 18세 이상 남·여 1천4명을 대상으로 한 ‘국내 원자력발전 방향’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확대해야 한다’는 답변이 25%, ‘축소해야 한다’가 29%, ‘현상 유지해야 한다’가 36%로 나왔다. 축소 의견이 더 많긴 했지만, 2018년 6월의 ‘원전 확대’ 14%, ‘원전 축소’ 32%였던 것과 비교해 보면 2년 만에 확대 의견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특히 울진 신한울 3, 4호기 공사 중단에 대해서는 ‘건설해야 한다’가 32%로 ‘건설하지 말아야 한다’ 21%보다 높게 나타났다.

◆ 경북 탈원전 피해 ‘얼마나 되나?’

탈원전 정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이 경북이다. 김영식(구미을) 국회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울진 신한울원전 3, 4호기 공사 중단과 영덕 천지원전 1, 2호기 건설 백지화로 인한 피해는 고용 부문에서만 연인원 기준 1천240만 명의 일자리 감소가 있을 것으로 추산되고, 또 사회·경제적 손실과 법정지원금, 지방세수 등의 감소 피해는 대략 9조5천억 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특히 울진 신한울원전 1, 2호기의 경우 운영허가 지연만으로 지금까지 대략 6조 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추산했다.

경북 동해안지역의 탈원전 피해는 정부의 법정지원금만으로 한정해 보더라도 그 규모가 상당하다. 천지원전 1, 2호기의 경우 원전 운영기간을 60년으로 잡더라도 법정지원금 예상손실액이 2조5천537억 원(연간 425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며, 이외에 신한울 3, 4호기가 2조 원 이상, 신한울 1, 2호기가 1천140억 원(연간 380억 원), 조기 폐쇄된 경주 월성원전 1호기가 360억 원(연간 80억 원)에 이르는 손실이 있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여기에 원전 건설 백지화와 건설 중단, 운영허가 지연 등으로 인한 기회비용과 원전 유치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경제적 비용, 고용 감소 등을 다 포함하면 직·간접 피해 규모가 천문학적 금액으로 커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탈원전 정책의 영향으로 원전산업 매출액이 2016년 27조5천억 원에서 2019년 20조7천억 원으로 24.5% 감소했으며, 또 세계 최고 수준인 국내 원전생태계 붕괴로 인한 경제적 영향은 업계 종사자와 학계 및 대학의 전공자, 학생들의 미래 손실액까지 더할 경우 그 규모가 계산이 힘들 정도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박준우 논설위원 겸 특집부장



▲ 메인사진-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경북 동해안지역의 경제 피해가 날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경북도와 울진군, 영덕군, 경주시 등 지자체들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 방침을 밝혀 지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신한울원전 3, 4호기의 건설 중단에 반대하는 울진 군민들의 항의 시위 모습이다.
▲ 메인사진-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경북 동해안지역의 경제 피해가 날로 커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경북도와 울진군, 영덕군, 경주시 등 지자체들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 방침을 밝혀 지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신한울원전 3, 4호기의 건설 중단에 반대하는 울진 군민들의 항의 시위 모습이다.
▲ 울진원자력발전소.
▲ 울진원자력발전소.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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