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한 대권주자가 억강부약(抑强扶弱)으로 대동세상(大同世上)을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억강부약은 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주겠다는 의미이고, 대동세상은 유가에서 말하는 일종의 이상사회다. 사람이 천지만물과 어울려 한 덩어리가 된다는 원개념에서 유래한다. 대동세상은 누구나 꿈꾸는 세상이지만 존재한 적 없는 유토피아다. 억강부약과 대동세상은 사회주의로 가자는 뜻이다. 사회주의가 대동세상을 만든다면 당연히 거기로 가야 한다. 허나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

억강부약, 강한 사람을 자제하게 만들고 약한 사람을 도와주자는 데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억강부약은 사후적으로 작동돼야 순기능을 한다. 사전적 수단으로 원용된다면 역효과가 날 소지가 다분하다. 억강부약으로 대동세상을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이보단 부강부약이 더 효율적이고 현실적이다. 앞서가는 자에게 더 잘 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처지는 자에게 등 떠밀어주는 개념이다. 국가가 할 일은 페어플레이를 위해 강자나 약자에게 룰이 차별 없이 적용되도록 하는 것이다.

강한 자는 강한 대로, 약한 자는 또 약한 대로, 타고난 능력과 적성에 따라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맘껏 실력을 발휘하는 세상, 최대 만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자신만의 일에 종사할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누구나 제각기 최대의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조장·조력하는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억강부약이 아니라 부강부약(扶强扶弱)이 맞는다. 부강부약이 전체 파이를 최대로 키우는 현실적 비결이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일이 대동세상을 향하는 길이다. 국가가 나설 곳은 배분과 복지 파트일 것이다.

배분은 능력과 기여도에 걸맞게 성과나 결실이 불만 없이 분배되는 개념이다. 배분 시스템이 왜곡되지 않아야 각자 자기가 잘 하는 곳에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 배분은 비단 소득에 국한되지 않고 직업선택 분야에도 해당된다. 자기의 취향과 적성 그리고 능력에 맞는 곳에 공정하게 배정돼야 최대최선의 결과를 이끌어낸다. 국가는 그러한 흐름이 자연스럽게 유지되도록 돕는 일을 맡을 뿐이다.

특권과 반칙을 못하도록 규제·단속하고 룰을 지키도록 지도·감독하는 일은 국가의 책무다. 국가의 역할이 각자의 능력발휘를 제한할 정도로 퇴행적이어서는 안 된다. 포지티브 규제에서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돼야 하는 이유다. 규제개혁이나 규제혁파라 해 기본적인 룰마저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사안의 성격과 영향을 잘 형량해 규제의 적정선을 지키는 것이 주요 포인트다.

우리는 지금 전대미문의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지역 간, 이념 간, 노사 간 갈등이 이젠 세대 간, 남녀 간 불화로 불똥이 튀었다. 부동산, 탈원전, 역병, 저출산, 일자리부족 등 무수한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악순환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 불공정과 불신이 부추긴 결과다. 나쁜 정권의 인과응보인 터다. 고질이 될까 두렵다. 나라 밖에서 불어온 위기도 역대 급으로 만만찮다. 북한의 핵 위협,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위안부와 징용 문제, 영토분쟁 기타 등등 그야말로 부지기수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경제·사회의 급속한 변화, 기후 변화로 인한 환경 문제 등도 나라를 옥죄는 현안이다.

이러한 위기가 억강부약 정도로 해결된다면 그보다 좋을 순 없지만 너무 감상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처방이다. 고전적이고 유치찬란하다. 역지사지의 배려가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려 있어야 실마리가 풀린다. 이기주의를 자제하고 조급함이나 상대적 박탈감을 초탈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눈앞의 이득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위해 현재의 희생을 감수할 줄 아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발전과 성장은 경제·사회문제를 상당 부분 흡수한다. 발전과 성장은 창의와 상상력의 산물이다. 개인의 능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일이 요체다. 효율적인 유인시스템이 바로 서 있어야 한다. 균등만 내세워 제대로 된 유인체계를 갖추지 못한다면 창의와 상상력은 물 건너간다. 부강부약이 답이다.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는 확실한 보상체계와 배분적 정의에 충실한 조세제도나 복지시스템은 환상의 커플이다. 억강부약은 하향 평균화시키는 포퓰리즘이자 물귀신작전에 다름 아니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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