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리아가 시끄럽다고 새장을 치워서야

발행일 2021-07-06 13:39:3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2006년 9월18일의 일이다. 오전 1시50분쯤 서울 영등포구 신길3동 신풍시장 재개발지구 내 2층짜리 주택이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다행히 김모(67) 할머니 등 이 집에서 자고 있던 3명은 건물이 붕괴되기 직전 가까스로 빠져나와 목숨을 건졌다. 할머니가 기르고 있던 복돌이라는 애완견이 요란하게 짖어대는 바람에 달래려고 밖으로 나온 덕이었다. 이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배명진 교수팀은 복돌이가 건물 붕괴 전 발생하는 초고주파 음향을 감지했기 때문에 그렇게 격렬하게 짖었다고 결론지었다.

지진이나 쓰나미, 허리케인, 화산 폭발 등 자연재난이 발생하기 전 동물들이 이상행동을 하는 경우는 자주 보고된다.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는 동물들의 이런 패턴을 분석해 대규모 자연재난을 미리 예측하는 프로그램 개발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직전에는 안절부절못하는 개와 고양이가 유독 많았다. 2008년 5월10일 중국 쓰촨성 대지진 이틀 전에는 두꺼비 떼가 대이동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1923년 관동 대지진 직전엔 도쿄에 있던 쥐들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일화도 있다. 동물들이 땅 속의 미세한 흔들림, 기압이나 초고주파 음향의 변화 등 전조증상을 알고 미리 움직인 것이었다.

모두 재앙이나 위험을 예고하는 동물들의 능력을 보여준다. 예전엔 생태계의 아주 작은 변화까지도 알아차리는 동물들의 이런 능력을 활용해 조기 경보 장치로 활용하기도 했다. 바로 ‘탄광 속 카나리아’이다. 19세기 유럽의 광부들은 땅속 깊은 탄광에 들어갈 때는 카나리아를 새장 속에 넣어 데려갔다고 한다. 카나리아는 몸집이 작고 대사활동이 빨라 탄광 벽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 등의 유독가스에 민감해서다. 카나리아가 이상행동을 보일 경우 광부들은 위험신호로 받아들이고 즉시 작업을 중단하고 대피했다. 때문에 ‘탄광 속의 카나리아’는 위험을 예고하는 신호, 즉 조기경보를 말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잠수함 속의 토끼’도 ‘탄광 속의 카나리아’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위험 징후를 감지하고 경고하는 역할을 했다. 완전 밀폐 공간인 잠수함에서는 공기가 나빠지면 산소 농도 변화에 민감한 토끼가 먼저 쓰러진다. 승무원들은 이걸 보고 잠수함을 떠오르게 해 신선한 공기로 환기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잠수함 내 이상을 알려주는 기능은 토끼가 맡고 있었다.

‘25시’라는 소설로 유명한 루마니아 출신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는 독일군에 입대한 후 잠수함에 배치됐다. 어느 날 잠수함 내 경보장치였던 토끼가 죽자 게오르규가 토끼 역을 맡게 됐다. 게오르규는 잠수함 내 맨 아래쪽 토끼가 있던 자리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글 쓰는 작가는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은 존재’라는 통찰을 얻었다. 진정한 문인이라면 현실세계의 문제를 바로 인식하고 이 사회에 경각심을 일으켜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문인 뿐 아니라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은 역할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요즘 한국 사회는 어떤가. 정치적인 이슈가 다른 분야의 모든 문제들을 덮어버리고 있다. 종종 불거져 나오는 카나리아의 울음소리나 토끼의 몸짓마저도 한순간에 정치적인 이슈에 묻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떨 때는 애써 이런 위험신호마저 무시하거나 일부러 부인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이를 알리려는 지식인들도 점차 사라질 것이다. 갈수록 입을 닫아버리는 지식인들도 더 늘어날 것이고….

카나리아 역할, 토끼 역할을 하는 지식인들이 사라진다는 건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징조다. 유럽의 대형 와이너리가 있는 포도밭 옆에는 붉은 장미를 심는다고 한다. 장미가 병충해에 민감하다보니 포도나무에 감염될 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든든한 파수꾼 역할을 해서다. 누가 파수꾼인가. 누가 카나리아이고 토끼인가. 게오르규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식인들이라는 건 자명하다. 최소한 이 사회의 이상증상을 먼저 인지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역할을 이들은 해야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때 악은 싹튼다. 혹여 카나리아의 울음소리가 거슬린다고 새장마저 치워버릴까 그게 걱정된다는 말이다.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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