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는 기다리지 않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름의 오이나 가지, 토마토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봄에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심고 봄 내내 기다려야 한다.

시골에 이사하면서 체리나무와 블루베리를 심었다. 도시에서는 시장에 가면 체리와 블루베리는 지천이지만 우리가 심은 체리와 블루베리에서 과일을 따먹기 위해서는 적어도 일 년은 기다려야 한다.

꽃도 마찬가지다. 내년에 예쁜 꽃을 보기 위해서 올해 마당 여기저기에 꽃을 심어야 한다. 우리는 내년을 위해서 꽃을 심고 나무를 심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년이 되면 우리가 원하는 만큼 꽃이 피어줄지, 열매가 달려 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필요하면 언제나 시장으로 달려가던 도시 생활을 생각하면 이렇게 천천히 가는 생활도 괜찮은 것 같다.

물론 시골에서도 필요하면 언제든지 시장에서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시골 사람들은 필요하다고 해서 금방 시장에 가서 사오는 생활은 가급적 하지 않는다. 언제쯤 되면 밭에서 어떤 것들이 수확되는지 알기 때문에 천천히 그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처음 시골에 내려와서 마당에 나무를 심을 때는 마음이 급했다. 금방이라도 나무들이 우거지게 자라서 그늘을 드리우고, 과실나무에는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리기를 고대했다. 그러나 그럴 리가 있는가.

집 옆에는 아름드리 뽕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적어도 수십 년은 된 듯 하다. 저 나무 한 그루가 저 만한 그늘을 드리우기 위해서 보낸 수십 년의 시간을 생각하면 인간의 삶은 얼마나 짧은 찰나인가. 그러나 우리가 심은 나무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저만큼 자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씩 나무를 심는다. 세월이 지나면 누군가는 그 나무 아래서 쉬어 갈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던 스피노자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인간이란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시골 생활을 하면서 알아 가는 중이다.

빨리빨리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하고, 그 결과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기술 고도의 생활에서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 방법을 찾겠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는 다만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고 내일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올해 심은 체리와 블루베리에서 내년에 열매가 열릴지는 모르는 일이다. 열리지 않는다면 그 다음해를 또 기다려야 하겠지.

과수원에는 수십 년은 된 듯한 자두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에서는 당연히 내년에 또 자두가 열릴 것이다. 봄부터 이 나무에 자두가 열리길 기다리며 나무를 수십 번은 올려다 본 듯 하다. 도시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두가 익을 무렵이면 시장에 가서 자두를 사먹으면 그만 이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과수원의 자두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자두를 사먹지 않았다. 그렇게 먹는 것도 기다리게 된다. 이렇게 시골에서는 모든 것에 기다림이 필요하다.

여름의 단 7일을 살기 위해서 7년이란 세월을 땅 밑에서 보낸다는 매미도 있지 않은가. 이 한 계절을 기다리는 것이 무어 그리 대수겠는가.

그러나 시골에서 천천히 다음 계절을 기다리고, 내년을 기다리는 이 생활이 나는 참 좋다. 이 자연 속에서 내 몸도 그렇게 천천히 무언가를 기다리며 늙어가는 것 같아서.

천영애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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