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수제맥주 아카데미를 운영하다 보면 여러 종류의 맥주를 맛볼 기회가 많다. 맥주를 만드는 방법과 맥주양조 이론을 주로 강의하지만 맥주시음도 필수 커리큘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시음용 맥주를 사기 위해 대형 마트에 들렀다가 최근의 수제맥주 인기를 실감했다. 특징적인 수제맥주 몇 종류는 찾을 수 있었지만 요즘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로부터 가장 인기를 끄는 맥주는 품절이었다.

밀가루 업체인 대한제분과 세븐브로이의 협업으로 지난해 5월 출시된 곰표 맥주는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150만개의 캔이 소진되는 데 6개월이 소요됐지만 지난달 나온 2차 물량 300만캔은 2주 만에 완판이었고 3차 물량 360만캔도 일주일 만에 소진됐다.

다른 편의점 업체가 북유럽 아웃도어 브랜드와 협업한 수제맥주도 60만캔이 이틀 만에 동이 났다는 소식이다. 이들의 성공 소식에 레트로 풍의 수제맥주 협업은 붐을 이루고 있다. 속옷 업체 BYC와 협업한 맥주를 출시했다는 소식도 들리고 국민 장수 껌 브랜드와 양조장이 콜라보한 세 번째 전략 맥주도 출시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양조장과 이색업종 간의 협업으로 탄생한 맥주가 요즘 핫한 품절템(품절 상품)이 된 이유는 뭘까. 유통업계는 코로나19로 ‘홈술족’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또 수제맥주 캔을 하나의 ‘굿즈(Goods)’로 여기는 인식도 한 몫을 했다. MZ세대 사이에서 이런 상품을 구매하고 SNS에 인증하는 문화가 수제맥주 시장의 성장을 이끈 것으로 보고 있다. 복고풍 브랜드를 소환해 전혀 관련이 없는 상품 사이의 ‘뚱딴지같은 협업’이 젊은 소비자를 잡는 효과를 낸 것이다.

수제맥주는 이같은 레트로 풍 콜라보 붐을 타고 시장규모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수제맥주 시장규모는 1천180억 원이었다. 이는 2018년의 600억 원에 비하면 거의 두 배 가량 성장한 수치다. 엄청난 성장세이다. 적어도 수치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현실은 전혀 다르다.

한국수제맥주협회는 소규모, 독립성, 지역성을 수제맥주의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한 바 있다. 즉, 연간 생산량 4만㎘ 미만의 소규모 업체로, 주류사업을 하는 대기업 지분이 33% 이하인 독립성을 갖춰야 하며, 주력 브랜드의 국내생산 비율이 80% 이상이라는 지역성을 갖춘 양조장에서 생산해야 수제맥주라는 것이다.

이는 소규모 양조장이 자체 개발한 레시피에 따라 지역에서 생산하는 특색있는 맥주가 수제맥주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생산규모가 벌써 대기업 수준이고, 대규모 대기업 자본이 투입돼 대량 생산하는 ‘콜라보 맥주’는 ‘무늬만 수제맥주’ 아닌가.

곰표 맥주를 생산하는 세븐브로이도 소규모제조면허가 아닌 일반면허로 맥주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제조물량으로 봤을 땐 이미 소규모 제조라는 수제맥주의 범위를 넘어섰다는 말이다. 수제맥주의 진정한 가치는 특색 있는 소량다품종 맥주 생산이라 했다.

올해 코스닥에 상장한 제주맥주도 마찬가지다. 롯데칠성음료의 충북 충주 공장에서 대표 제품인 ‘제주위트에일’을 대량 생산한다. 이같이 획일적으로 대량 생산하는 맥주를 수제맥주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현재 면허를 받은 전국의 수제맥주양조장은 160여 곳이다. 이 중 흑자를 내는 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 흑자라 하더라도 겨우 적자를 면할 수준이라는 게 문제다. 이는 초기설비투자로 수익성이 낮기 때문. 수제맥주의 온라인 판매가 허용돼야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마저도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당장 생산한 맥주를 캔이나 병에 담을 설비조차 없는데….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더라도 언감생심일 뿐이다.

지금 ‘무늬만 수제맥주’가 품절대란을 겪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동안 소규모제조면허를 가진 ‘진정한 수제맥주’는 여전히 적자의 구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파른 성장세는 ‘무늬만 수제맥주’인 대자본이 끌어가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정한 수제맥주’를 키울 방안이 급하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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