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 돌아서다 와인병이 깨졌다/시금한 백포도주 보도블록에 흥건했다/참다가정말 못 참아/주저앉은 그 여인//서둘러 시멘트가 체액을 쓸어 담았다/단 한 방울마저도 누가 알아채기 전/지금껏/믿을 수 없다/헛것을 보았는지//깨지는 소리도 바스러진 와인병도/발각되지 않았고 신고한 사람도 없다/골목을/적시며 번지던/내가 거기 있었을 뿐

「정음시조」(2021, 3집)

김양희 시인은 제주 한림 출생으로 2016년 시조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넌 무작정 온다’가 있다.

‘가회동 꽃집 골목’에 대해 박현선 평설가는 꽃집 골목에서 참던 소변을 누고 만 여인에 대한 상징과 은유가 가득 담긴 시조라면서 화자가 말하는 깨진 와인병과 보도블록을 흥건하게 적신 백포도주는 각각 여인과 그녀의 소변을 상징하는 표현이라고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와인병이 깨진 것에 눈길이 매달리면 그것으로 독해의 실마리를 풀어가려고 애쓸 텐데 그는 이러한 시적 장치가 시인의 상상력으로 허용되는 시적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남다른 시각이다. 그리고 그저 그려낸 대로 바라보고 말하는 대로 이해하면 그만인 다른 시들과 다르게 이 시조는 잔잔한 분위기 속에 속내를 알기 어려운 상징적 표현들을 가득 담고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화자는 각 연의 마지막 세 문장의 글자 수를 비슷한 구조로 통일시킴으로써 리듬감을 발생시키고 있는 점을 살피면서 작품 속에서 생동감을 더욱 높이는 효과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조형미학적 관점에서 본 것이다. 또한 이러한 구조는 시를 더욱 읽기 편하게 해 마치 독자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소변을 누는 여인을 목격한 듯 생생한 가상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살핀 점도 눈길을 끈다. 이어서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잔잔한 분위기이지만, 소변을 참았던 경험을 떠올려 본다면 시 속 상황은 역설적으로 평온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라고 본 점도 섬세한 시선에서 비롯된 해석이다. 하지만 다행히 깨지는 소리도 바스러진 와인병도 발각되지 않았고 신고한 사람도 없다, 라는 마지막 구절은 화자 이외에 여인을 목격한 또 다른 사람이 없음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하여 이 구절을 읽으며 소변을 누는 소리를 깨지는 소리로, 여인의 모습을 바스러진 와인병으로 환원하는 화자의 표현력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목격한 자신을 골목을 적시며 번진다고 표현하는 화자의 언어감각까지 세밀히 짚는다. 그는 또 처음 고요한 마음으로 읽은 이 시는 온전히 해석하기까지에 어려움이 컸다면서 여인이 참던 것이 무엇인지, 마지막 연에서 골목에 있던 나는 누구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여러 번 반복해서 읽다보니 체액이라는 단어에서 소변을 연상해 접근하게 됐다, 라는 그의 말에서 시 읽기에는 인내가 때로 필요함을 자각하게 된다. 이 점이 이 시조를 좋아하는 이유라는 말이 그것을 잘 뒷받침한다. 생경하고 낯설지만, 날카롭고 번뜩이는 시는 가식과 위선을 벗은 맨 몸의 위로 그 자체라고 보고, 시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과 기꺼이 노력하고 싶은 소망만 있다면 독자는 시인의 세계로 언제든지 건너갈 수 있음을 깨우쳐주고 있는 그의 글에서 시에 다가가는 한 방법론을 엿본다.

시는 본질적으로 은유라는 것을 간과해 버리면 독자는 와인병이 깨진 것, 시금한 백포도주가 보도블록에 흥건한 것에 붙잡혀서 해석에 혼란을 겪게 된다. 시는 어느 한 대목에서 독자가 흥미진진하게 풀어갈 수 있는 비밀스러운 장치가 설계돼 있다면 더욱 매력적일 수 있다. ‘가회동 꽃집 골목’처럼 말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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