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애인/ 유안진

발행일 2021-06-21 13:48:09 댓글 1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봤을까?/ 날 알아봤을까?

「둥근 세모꼴」 (서정시학, 2011)

‘둥근 세모꼴’이란 시집 제목이 범상치 않다. 둥근꼴은 원만하고 완벽한 이상적 세계를 상징한다면 세모꼴은 모나고 불완전한 현실세계를 상징한다. ‘둥근 세모꼴’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합이다. 상호 모순적인 세상사를 표현하고자 의도했다면 ‘둥근 세모꼴’은 부조리를 비트는 시를 실은 시집 이름으로 썩 잘 어울린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는 노가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마따나 살아오면서 ‘말하지 못한 걸 시로 말하고 싶은’ 시인의 진의를 읽을 수 있다.

난해하고 난삽한데다 장황하기까지 한 것을 거부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짧고 간명한 서정시를 극서정시(極抒情詩)라 일컫는다. 극서정시는 그냥 짧은 글이어서는 안 되고 해학과 기지만으로도 부족하다. 촌철살인 시어로 삶과 인생의 진리를 담아내야 한다. 그렇다고 명언이나 금언 또는 증명이 불필요한 철학적 명제가 극서정시인 건 아니다. 은유와 상징이라는 시의 기본을 갖추고, 짧지만 강한 감동을 주는 시적 장치가 불가결하다. 극서정시를 디지털시대의 시대정신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옛날 애인’은 극서정시로서 손색이 없다.

남녀가 만나서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때론 사랑하다가 헤어지기도 한다. 과학적 연구 성과를 보면 사랑의 유효기간은 겨우 5년 남짓. 그 전에 인연의 줄로 두 남녀를 묶어두고 자식을 생산하지 않으면 헤어질 개연성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이 오히려 보편적이다. 남녀 간 이별이 일상사라지만 실제 이별이 두리뭉실 넘어가는 건 아니다. 상대를 해코지하는 끔찍한 사태까지 벌어진다. 감정상태가 격앙된 탓일 수 있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훈련이 부족한 것일까.

한때 서로 사귀다가 갈라선 애인을 우연히 마주 친다면 머쓱하고 어색한 일이다. 서로 알아보고 목례 정도만 나누고 지나가는 것은 그야말로 우아하고 예의바른 모습이다. 앙금이 깨끗이 정리됐거나 서로 존중하는 마음일 것이다. 옛정을 생각해서 커피 한 잔 정도 같이 하며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나누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심의 눈이 도처에 있고 감정의 응어리가 남아 있어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터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우연히 만나 지나친 경우 생각이 복잡하게 전개된다. 자신이 못 봤거나 못 알아봤다면 안 만난 것이다. 자신이 그 사람을 봤다면 여러 가지 생각이 고차방정식으로 설정된다. 호기심과 궁금증이 증폭된다. 그 사람은 봤을까? 못 봤다면 생각은 거기에서 끝난다. 그 사람이 봤다면 과연 알아봤을까? 삭아버린 모습을 보고 실망했던 걸까? 세월이 흐르고 변했으면 몰라볼 수 있다. 또 모른 척 하는 일도 있을 법하다.

알고도 모른 척했다면 그동안 만사가 잘 풀리지 못해서 창피해서였을 수 있다. 잘 풀렸다면 과시나 보복심리에서 아는 척하며 자랑스레 명함이라도 건네고 갔을 터다. 아는 척 해야 할 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우유부단해 타이밍을 놓쳤거나 그냥 어영부영 지나쳤을 가능성도 상당하다. 아는 척 해봐야 서로 곤란할 뿐 모른 척하는 게 상책이라고 판단했을 확률이 크다. 사랑의 감정은 비록 사라졌지만 관심은 여전히 살아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단 두 마디로 정리했다. 시인의 섬세한 감성에 미소로 답한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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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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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noo*****2021-06-21 14:11:33

    시는 최고~!!! 서평도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