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내게/ 걸어오지 않고서도/ 많은 말을 건네주듯이/ 보고 싶은 친구야/ 그토록 먼 곳에 있으면서도/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너// 겨울을 잘 견디었기에/ 새 봄을 맞는 나무처럼/ 슬기로운 눈빛으로/ 나를 지켜 주는 너에게/ 오늘은 나도/ 편지를 써야겠구나// 네가 잎이 무성한 나무일 때/ 나는 그 가슴에 둥지를 트는/ 한 마리 새가 되는 이야기를// 네가 하늘만큼/ 나를 보고 싶어 할 때/ 나는 바다만큼/ 너를 향해 출렁이는 그리움임을/ 한 편의 시로 엮어 보내면// 너는 너를 보듯이/ 나를 생각하고/ 나는 나를 보듯이/ 너를 생각하겠지?/ 보고 싶은 친구야

「시간의 얼굴」 (분도출판사, 1991)

친구는 흔하고도 귀하다. 젊을 땐 세상물정을 모르고 친구 따라서 강남 간다. 평생을 살면서 진정한 친구를 한 명이라도 사귀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허투루 들린다. 잘 나갈 땐 주위에 웃는 얼굴들이 그득하다. 다들 앞장서서 친구를 자처한다. 어려움이 닥치면 그런 얼굴들은 다 떨어져나간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다. 시인은 맑고 고운 마음을 가진 순수한 수녀다. 참다운 친구가 있어 편지를 쓰고 또 시를 짓는다.

바람을 타고 숲의 향기를 전해주는 나무처럼 친구는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는 것같이 마음이 서로 통한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진정한 마음을 안다. 나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너를 나도 역시 생각하고 그리워한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부를 때마다 가슴에 별이 되는 이름’이다. 시련의 시기를 현명하게 극복한 네가 슬기로운 지혜를 가지고 형극과 유혹으로부터 지켜주었기에 지금 내가 의연히 존재하고 있는 터다. 나는 나를 향한 너의 발가벗은 마음을 본다. 나도 너를 향한 붉은 마음을 너에게 보낸다.

광활한 공간 속으로 파란 산소를 뿜어내며 생명을 불어넣는 나무 같은 친구야, 넌 늘 주기만 하고 난 늘 받기만 한 듯하다. 네가 늘 받기만 해도 좋다. 난 늘 주고 싶을 뿐, 내 마음은 항상 그렇다. 네가 숲속의 한그루 나무라면 ‘나는 그 가슴에 둥지를 트는 한 마리 새가’ 되고 싶다. 네가 하늘만큼 나를 보고 싶다면 나는 끝없이 출렁이는 바다만큼 너를 향해 달려가고 싶다. 하늘만큼 땅만큼 어린애 마냥 널 그리워한다.

아플 땐 몸을 사리지 않고 돌봐주고, 슬플 땐 함께 눈물을 흘리며, 기쁠 땐 오히려 더 기뻐해주는 너는 보석 같이 빛나는 벗이다. 진정한 만남으로 간직하고 싶다. 진실한 우정으로 기억하고 싶다. 한때의 동행이기보다 영원한 친구로 남고 싶다. 너는 나, 나는 너. 너와 나는 둘이 아닌 하나다.

나의 실책을 비난하지 않고 보듬어주며 나의 잘못을 배척하지 않고 이해해주는 너는 가슴이 한없이 넓디넓구나.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남이 하기 어려운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고 서슴없이 하는 너는 보약 같은 존재다. 하여, ‘잎이 무성한 나무에 둥지를 트는 새처럼 네 가슴 속에 한 마리 새’가 되는 내 이야기와 간절한 그리움을 실은 한편의 시를 너에게 보낸다.

시인의 속삭임이 귀를 적신다. ‘내가 새라면 너에게 하늘을 주고 내가 꽃이라면 너에게 향기를 주겠지만 나는 인간이기에 너에게 사랑을 준다.’ 황폐한 정신을 힐링시켜주고 지친 몸을 순화시켜주는 산소 같은 시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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