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그날이야?

발행일 2021-06-13 15:51:5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들판이 초록 소리를 내는 듯하다. 따가운 햇볕이 가득한 길에는 분홍 달맞이꽃이 낮에 피어나 고개까지 흔들며 반가워 손짓한다. 밤이 아닌 낮에 피는 낮 달맞이꽃이 텃밭으로 가보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오랜만에 텃밭으로 향한다. 주말마다 내린 비로 제 세상을 만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마구 텃세를 부린다. 주렁주렁 여주가 달려있으리라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여주 모종 심은 곳을 찾아 잡초 사이를 헤집어보니 어린 순이 빛에 눈이 부신 듯 하늘거리고 있다. 주먹만 한 토마토가 열려있으리라 상상하며 침까지 삼키는데, 염주만 한 초록 토마토 한 개가 가느다란 줄기에 매달려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다. 잡초, 사랑 한번 받지 않고도 씩씩하게 뻗어나 신나게 텃밭을 장식하는, 그들이 참 대견해 보인다. 그래 잘 자라라, 여주든, 토마토든, 이름 모를 잡초든, 이 세상에 왔으니 너희들의 시절도 한번은 풍미해야 하지 않겠는가,

잡초밭에서 씨름하고 있으려니 산책 중이라며 얼굴에 홍조를 띤 선배 부부가 반색하신다. 오랜만이라는 인사 건네다 보니 참으로 사람이 그리워지는 요즈음인 것 같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5인 이상 사적 모임이 제한을 해온 지가 벌써 몇 달이 지났던가. 서로 마음을 터놓고 정을 나누던 그 시절이 언제였던가 싶다. 서로 안부 묻고 살아가는 동안에 일어난 자잘한 것들 이야기하며 맛난 것 함께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온다면 얼마나 좋으랴.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대화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마음껏 이야기하고 웃을 수 있었던 시간이 꿈결 같다.

무작정 여행에 동참했던 그때가 떠오른다. 입사 동기가 쉬는 날에 등산한다기에 따라간 적이 있었다. 어둑한 새벽에 버스에 올라서 목적지까지 등산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사람들이 산을 함께 오른다는 그 동지 의식 때문일까.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재미있게 잘 풀어냈다. 산길을 걸으면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다가 산정에 오른다. 목표에 도달했다는 성취감 때문이었을까. 모두 상기된 얼굴로 이야기를 해대기 시작이다. 산 대장을 맡았던 A씨가 50년 만에 만난 시골 초등 동창들의 모임에서 일어난 일을 전한다. 어떤 친구가 동기 모임 하는 그날 저녁이 자기 생일이라고 하면서 축하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나도 오늘이야”를 외치더라고 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생일, 동창생의 절반이 같은 해 같은 날 생일이었다. 자초지종을 캐다가 결론은 마을의 이장님께서 아이들 생년월일 적은 것을 잃어버렸다고 결론이 났다고 한다.

예전 시골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요즘처럼 병원에서 출생증명서를 받아 신고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이장한테 부탁하곤 했다. 아이들의 출생을 알리고 그가 읍내에 나가는 일이 있으면 한꺼번에 신고하곤 했으리라. 그러는 사이 생년월일 적은 것이 어디로 달아나 버렸을 테고. 신고자가 임의로 정한 날로 신고하면 그날이 어쩔 수 없는 법적인 주민등록상의 생일이 돼버렸으리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떤 이는 누나보다 생일이 빠르게 등재돼 오빠가 된 이도 있다고 한다. 오래전, 부모님 세대에는 태어난 아이들이 전염병 등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흔했기에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나 한두 돌이 지나서도 아무 탈 없이 잘 자라면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들었다. 그것도 동네 이장이 모아서 장날에 읍이나 면사무소에 나가 출생신고를 대신해주는 경우가 있었다. 아마도 그 시골 학교 동창들은 그들의 이장님 덕분(?)에 같은 날에 출생한 것으로 신고가 돼서 생년월일이 같게 되지 않았을까. 장날이 바로 법적인 생일, 주민등록상 생일이 돼 버리지 않았을까.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B가 한마디 거든다. 그래도 이 경우는 나은 편이고 누나보다 더 앞선 연도로 기록된 경우도 있었다. 그러자 C가 거든다. “아버지가 아닌 할아버지 자식으로 출생신고가 된 경우도 있었다”라고.

코로나가 아무리 세상 사람들에게 거리두기를 강요하지만, 참으로 따뜻한 이웃들이 있는 것 같다. 아이 학교 부모 모임에서 만나 수십 년 넘게 자주 만나는 지인이 있다. 둘은 남이 아니라 가족처럼 서로 챙긴다. 아이들이 아프면 서로 도와주고 아빠가 사정이 안 되면 다른 집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한다. 운동회를 챙기지 못하는 친구에게 도시락을 준비해 대신 참석해준다. 바쁠 때 이웃의 농사를 서로 도와주던 그 옛날처럼.

사람 사이의 정은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이의 행동과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동서끼리 자매 이상으로 친하게 지내면서 둘만의 여행을 즐기는 동생네. 그들을 보면서 지금 같은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을 나누고 자그마한 것이라도 서로를 위해 많이 표현하고 사는 것 아닐까 싶다. ‘너도 그날이야?’하던 동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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