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받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하나

「황해문화」 (새얼문화재단, 2017 겨울)

갑질은 패가망신이다, 갑이 갑으로서의 권한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건 정상이다. 갑질은 갑의 우월적 지위와 권한을 부당하게 악용해 을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말과 행동 등 모든 영향력을 망라한다. 때로는 마땅히 있어야 할 작위가 없는 것이 을을 해한다면 부작위도 갑질이 될 수 있다. 갑질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SNS를 통한 무분별한 신상 털기나 과도한 프라이버시 침해는 평생 쌓아올린 공든 탑을 단숨에 무너뜨리기도 한다. 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사법적 단죄의 대상이 됨은 물론이다.

미투(Me Too)는 ‘나도 당했다’는 의미로 갑질에 대한 폭로이자 고발이다. 갑질이 성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대중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갑의 유명세에 따라 사회적 파장은 폭발적일 수 있다.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지점임을 부인하기 힘든 면도 있지만 미투는 거부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관계가 잠복돼 있다는 특수성이 있다. 성폭행은 갑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중죄로 다스리고 있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미투는 성희롱이나 성추행에 방점이 찍힌다.

En선생의 여성편력이나 성추문은 비밀 아닌 문단의 술자리 안주다. 그래서 En선생에게 ‘나도 당했다’는 미투 폭로는 새롭거나 놀랍지 않다. 마치 처음 안 것처럼 호들갑 떠는 사람들의 반응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 정도의 성희롱이나 성추행 정도는 무차별적으로 거의 일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시는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을뿐더러 다소 시시하다는 반응이 솔직한 표현이다. 하지만 노벨상 후보로 오르내리는 문단의 거물을 이 정도나마 직설적으로 풍자하는 시를 쓴 시인은 정신력이 남다르고 용기가 가상하다.

미투는 페미니즘과 결이 다르다. 남성과 여성은 결코 적이 아니다. 서로 관심을 가지고 이성을 유혹하는 일은 본능이고 바람직하다. 다만 성적인 시도는 서로의 의사에 반하지 않아야 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일방의 의사에 반해 성적으로 불쾌한 말이나 접촉을 기도하는 것은 미투 대상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권한을 남용하거나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해 상대방에게 행하는 성적인 갑질은 조속히 추방해야 할 폐단이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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