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군-경북문화재단과 업무 협약 정확한 발굴조사 준비||제48호분의 성격 규명 및 성주지역







▲ 성주군이 100년 만에 재발굴을 추진하는 성산동 고분군 중 가장 큰 규모인 제48호분(대분)의 모습.
▲ 성주군이 100년 만에 재발굴을 추진하는 성산동 고분군 중 가장 큰 규모인 제48호분(대분)의 모습.






성주군이 성산동 고분군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제48호분(대분)에 대한 발굴을 100년 만에 다시 추진하기로 해 출토될 유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를 위해 성주군은 최근 경북문화재단 문화재연구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제48호분에 대한 정확한 학술 발굴조사에 나설 협업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군은 이번 발굴을 통해 제48호분의 성격을 정확히 규명하는 것은 물론 성주지역의 고분문화 및 실체를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86호인 성산동 고분군은 성주를 대표하는 중심 고분군이다. 그 중에서도 제48호분은 가장 규모가 커 ‘대분(大墳)’으로 불리고 있다.



성산동 고분군은 1917년 조선총독부의 ‘조선고적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실시된 현장조사 과정에서 분포와 위치가 처음 학계에 알려졌다.



이후 1918년과 1920년 고분 발굴이 진행됐으며, 제48호분은 1920년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위원이었던 ‘야쓰이 세이이쓰’가 조사했다.

발굴 당시 중심석곽에서 다량의 유물이 쏟아져 나와 문화재 관련 학계는 물론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조사를 끝낸 야쓰이가 조사 내용을 전혀 보고하지 않았다.

발굴 과정도 매우 허술해 고분이 손상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1920년의 발굴 조사는 단기간에 주곽 내부의 유물만 파낸 발굴 방식에 그친 것이다. 고분의 축조 방식은 물론 주곽의 구조·형식에 대한 실측과 기록도 누락됐다.

그는 고분의 중심부를 찾아 천장을 파괴하고 인부를 들여보내 주곽의 내부에서 나온 유물만 수습했다.

다행스럽게도 출토된 유물들은 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겨져 지금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또 당시 조사 과정의 일부 사진과 서류도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성주군이 100년 만에 진행하는 이번 학술 발굴을 통해 주곽의 구조·형식에 대한 기록과 촬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부곽에서 유물이 발견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문화재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병환 성주군수는 “최근 경주 및 익산 등에서도 일제강점기에 발굴됐던 고분을 재발굴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며 “성주의 성산동 고분군 역시 또 하나의 값진 사례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 성주군이 100년 만에 재발굴을 추진하는 성산동 고분군 중 가장 큰 규모인 제48호분(대분)의 전경.
▲ 성주군이 100년 만에 재발굴을 추진하는 성산동 고분군 중 가장 큰 규모인 제48호분(대분)의 전경.




이홍섭 기자 hslee@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