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 달은 어디에나 떠 기울여 널 봐/그 마음 다 안다, 그건 그래, 그렇다 하는…/귀엣말,/환한/북/소리,/지금 다시 널 낳는 중

「달북」 (2014, 시인동네)

문인수 시인은 1945년 경북 성주 출생으로, 1985년 심상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늪이 늪에 젖듯이’, ‘뿔’, ‘홰치는 산’, ‘배꼽’, ‘동강의 높은 새’, ‘쉬!’, ‘적막 소리’ 등과 동시집 ‘염소똥은 동그랗다’와 시조집 ‘달북’이 있다.

그의 시조는 기율에 충실하면서도 끈끈한 자생력을 가지고 있고 자연친화적이다. 그만의 문체와 시풍, 다채로운 유형의 전개 양상으로 시조의 또 다른 표본을 제시한다. 본업인 자유시에서 일가를 이뤘기에 그의 시조 또한 자유분방하고 참신하다. 문학적 성취가 남다른 점은 미세한 감각과 개성적인 세계 해석 때문이다.

‘달북’을 보자. 달은 어디에나 떠서 우리를 바라본다. 달은 사람들에게는 대화 상대다. 교감이 이뤄질 때 서로가 서로에게 깊은 이해와 신뢰를 쌓게 된다. 그건 그렇고 저건 저렇고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분리될 수 없는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그 순간 귀엣말과 같은 환한 북 소리가 들리고 다시 출산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낳는다는 것은 영원 지향적인 사건이다. 면면한 역사가 흐르고 있다는 방증이다. 달이 북인지 북이 달인지 모르는 가운데 자아와 더불어 한 호흡을 이루며 빛나는 세계가 ‘달북’이다.

한 편을 더 살피자. 또 다른 단시조 ‘구름’에서 저러면 참 아프지 않게 늙어갈 수 있겠다, 라면서 딱딱하게 만져져서 맺힌 데가 없는지 제 마음을 또 뭉게뭉게 뒤져보는 중이라고 노래한다. 이렇듯 화자에게 구름은 무심코 흘려보내는 단순한 구름이 아니다. 구름에서 자아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구름의 생성과 현현에서 아프지 않게 늙어 갈 수 있는 미덕을 읽는다. 순응이다. 앞서 살폈듯이 내 몸에서 맺힌 데나 딱딱하게 만져지는 곳이 없는지 돌아보게 한다. 구름의 피어오름을 우리는 흔히 뭉게뭉게, 라고 적는다. 이 의태어는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런데 종장에 이 말이 놓이면서 우리 삶과 묘하게 접맥돼 강한 울림을 낳는다. 마치 구름처럼 자신의 마음을 뭉게뭉게 뒤져보는 중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자성이다. 내면 성찰이다. 원문을 보면 초장을 따로 뚝 떼어놨는데 그것도 의도적이다. 자연을 노래하되 인생의 깊은 의미가 실리자 ‘구름’은 홀연히 의미심장한 소우주로 탈바꿈한다.

문인수 시인의 유일한 시조집 ‘달북’의 단시조들은 단순한 시의 한 형태가 아니다. 영적인 생명체다. 살아 움직이는 서정적 생명체로서의 시조는 현대인들의 능동적인 생존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정신적 양식(樣式)과 양식(糧食)이다. 날마다 복잡다단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시조 감상과 시조 쓰기의 기회가 폭넓게 주어져야 할 것이다. 부대끼고 때로 쓰러져가는 이들의 마음을 보듬고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간명한 양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시인은 땅위의 삶을 다하고 하늘로 떠났다. 늦깎이로 등단했지만 꾸준한 시작 활동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며 입지를 굳혔고, 따뜻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순수 서정시를 추구해왔다. 압축적이고 절제된 시어로 외롭고 소외된 존재들을 감싸 안으며 공감과 연민을 드러내는 작품을 주로 썼다. 그는 진실로 전 생애를 던져 시와 더불어 살았다. 그가 남긴 작품은 영원토록 불후 할 것이다. 날이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그의 생애에 유일한 시조집 ‘달북’을 마음 깊이 기억하면서 그를 아프게 기리는 이 글을 맺는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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