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진달래도/ 새색시 분홍저고리인양/ 수줍게 피고/ 종다리도 지굴지굴/ 글을 읽는 봄이 와서/ 아버지와 함께 숫돌에 낫을 갈아/ 산에 소 풀 베러 갔네// 졸졸졸 산골 물소리/ 햇빛 보러 번져 나오고/ 아버지와 함께 한나절 풀을 베는데/ 구름 속에서 종다리는 지굴지굴/ 봄바람은 이마에 흐르는 땀/ 닦아주곤 지나가는데/ 소 풀 한 짐 지게에 지고/ 끙끙 대며 비탈진 산길 내려오다가/ 뒤처진 나는 먹을수록 배고프다는/ 진달래꽃 꽃잎 따먹으며/ 산골 소년이 되어 있었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어미 소는 외양간에서 엄매엄매~~/ 아기 소도 아니면서 엄매엄매/ 어른 행세하며 수염 기른 염소도/ 엠매엠매~~/ 좀 우습기도 했지만/ 베어온 소 풀 나누어주니까/ 잘도 먹어치우는데// 아버진 논 갈러 들에 가시고/ 엄마는 호미로 캐어온/ 달래 냉이 씀바귀/ 마당가에서 다듬고 있었네/ 오늘은,/ 낫과 호미가 수고한 날이었네

「오늘의 가사문학」 (열린시학사, 2021 여름호)

시골에 살아본 사람은 소가 얼마나 소중한 가축이란 걸 잘 안다. 소는 논밭을 갈고 농산물이나 무거운 짐을 옮겨주며 소달구지를 끌어주는 믿음직한 전천후 일꾼이다. 살아있는 동안 온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 같은 존재다. 죽어서는 가죽에서 뼈까지 모두 다 남김없이 내어준다. 살신성인을 몸으로 실천하는 어진 성자다.

그런 까닭에 소는 어느 농가에서나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가족이 밥을 먹기 전에 소에게 먼저 먹이를 주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개나 돼지와 같은 가축은 아무리 친해도 사람이 먼저 먹고 난 연후에 남은 음식을 거둬 먹이로 준다. 소가 집안을 지탱하는 대들보나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다 보니 그 건강과 안녕을 챙겨주는 일은 어쩌면 당연하다.

소의 위상을 감안하면 소 먹이러 가거나 풀 베러 가는 일은 농가의 필수 일과이나 어른이 전담할 정도로 일의 강도가 높진 않다. 아버진 바깥일에 매이고 어머닌 집안일로 바빠 짬을 내기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집집마다 소먹이는 일은 애들 몫으로 떨어진다. 소고삐를 잡고 나온 애들이 산과 들에 소를 풀어놓고 올망졸망 뒹굴며 놀곤 했다.

풀 뜯어먹게 소를 놔둘 시간이 없는 경우나 겨울사료 비축 목적으로 소 먹일 풀을 베어와 햇볕에 말려둬야 한다. 이 풀 베어오는 일도 애들 몫이다. 허나 풀 베는 일은 애들 일치곤 만만찮다. 날카로운 낫을 가지고 쪼그리고 앉아 끊임없이 몸을 놀려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풀 베는 일도 위험하지만 망태기나 지게로 풀을 싣고 오는 일도 힘들다.

연분홍 진달래가 바위틈에 피어있고 하늘엔 종달새가 지저귀는 봄날, 아버지와 함께 산으로 풀 베러 간다. 시냇물은 재잘대며 햇볕을 쬐고 바람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준다. 아버진 풀 한 짐 지고 앞서서 가고 시인은 드문드문 핀 진달래를 따먹느라 뒤처진다. 진달래론 간에 기별도 안 간다. 감칠맛이지만 따먹을수록 허기진다.

소와 염소가 싱싱한 먹이를 보고 꼬리를 흔든다. 엄마소가 아기처럼 ‘엄매’한다. 경상도사투리로 엄마를 ‘엄매’라 한다. 수염 난 염소도 ‘엠매’한다. 염소가 소를 따라 우는 재롱이 귀엽다. 우습다. 또 ‘엠매엠매’를 연속해서 들으면 염소 울음소리 ‘매엠’이다. 어른은 쉴 틈이 없다. 아버진 논 갈러 가고 어머닌 봄나물을 다듬는다. 정겨운 산골생활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눈에 선하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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