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가 ‘이건희 미술관’ 대구 유치를 위해 파격적 제안을 하고 나섰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난 1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미술관 건립에 소요되는 건축비 2천500억 원 전액을 대구가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이건희 컬렉션을 보존하고 미래 세대에 전승할 수 있는 ‘이건희 헤리티지 센터’도 건립하겠다고 약속했다.

지역민의 문화 향유권을 확보하고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지자체로서는 엄청난 재정부담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대구시가 건축비 전액을 시 예산과 시민 성금으로 충당하겠다는 제안은 일종의 승부수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대구시는 이건희 헤리티지 센터 예정지로 북구 산격동 대구시청 별관(구 경북도청) 자리를 제안했다. 헤리티지 센터는 건축연면적 4만㎡ 규모의 미술관, 아시아 최고 수준의 수장고, 복합 문화공간 등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에 이건희 미술관을 지을 의사가 있는지 서울시에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체부가 서울시와 물밑 협의를 하고 있는 정황으로 읽힌다. 최종 방침이 확정되기도 전에 속내를 타진하는 모양새다. 대구를 포함해 유치 의사를 밝힌 전국 지자체들을 들러리로 전락시키는 꼼수에 다름 아니다.

이에 앞서 황희 문체부 장관은 지난달 21일 “이건희 미술관 입지는 많은 사람이 작품을 감상하고 향유하기를 바란 기증자의 정신과 국민의 접근성 등 두가지 원칙을 놓고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인구가 많은 수도권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돼 논란이 일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지방에서는 그 어떤 인프라도 유치할 수 없다. 정책 추진의 공정성과 객관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주무부처 장관이 문화의 지방분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도 그치지 않았다.

문화의 지방분권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이다. 정부가 비수도권 주민들의 문화에 대한 욕구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이건희 미술관의 비수도권 건립 원칙만 세워지면 대구는 다른 지자체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조건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지역의 문화 향유 수준이 높아지면 삶의 질은 비례해 향상된다. 지방이 살아나는 계기가 된다. 이건희 미술관 건립은 단순히 미술관 하나의 입지 결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현 정부의 문화 지방분권 의지를 가늠케 하는 척도가 된다.

정부는 대구시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간 강조해온 문화 지방분권 정책이 구두선이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



지국현 기자 jkh8760@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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