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초기 대구 북구 산격동 경대교 부근에 육군 제1훈련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구의 제1훈련소는 1950년 7월 창설돼 1951년 1월까지 반년 동안 신병 양성의 요람 역할을 했다.

현재 가장 큰 신병 훈련소는 1951년 11월 창설된 충남 논산의 육군훈련소다. 논산의 훈련소는 1999년까지 제2훈련소가 정식 명칭이었다. 대구의 제1훈련소는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1951년 후방인 제주도 모슬포로 옮겨갔다. 그 후 제1훈련소는 1956년 논산의 제2훈련소에 통합됐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구에 있던 제1훈련소가 육군훈련소의 뿌리인 셈이다.

제1훈련소는 현재 대구에 있는 7곳의 국가수호 사적지 중 한 곳이다. 그러나 지금 산격동에서는 제1훈련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훈련소 건물과 시설은 멸실됐다. 정확히 어디라고 알려져 있지도 않다. 안내판은커녕 작은 표지판조차 없다.

대구의 제1훈련소는 매일 1천 명의 신병을 배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용 병력은 5천~6천 명이며 입소 후 1~2주간의 훈련을 실시했다. 시설은 열악했다. 병사들의 숙소마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천막 속에 가마니를 깔고 내무생활을 했다. 거센 바람이 불면 천막이 날아가지 않도록 병사들이 붙잡고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대구의 제1훈련소는 국가수호 사적인 동시에 대힌민국 현대사의 한 부분이다. 훈련소를 거쳐 전선에 투입된 수많은 젊은이와 가족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전쟁의 참상을 모르는 지금 세대에는 전쟁의 비극을 일깨울 수 있는 생생한 산 교육의 현장이 될 수 있다. 스토리텔링화하면 관광자원으로도 개발이 가능하다.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의 소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구 제1훈련소를 거쳐간 사람들의 연령은 지금 80대 후반에서 90대 초중반이다. 마음만 먹으면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지나면 모든 기억은 사라진다. 시간이 많지 않다. 이미 생존자가 많지 않을 수도 있다. 시급히 증언을 채취하고 고증에 나서야 한다.

당시 기록 자료, 사진 등을 찾아야 한다. 훈련소를 거쳐간 병사들의 명단도 찾아내야 한다. 훈련소 부근에 산 사람들의 목격담도 채집이 가능할 것이다. 훈련소 안팎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 급선무다.

대구 제1훈련소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사적이다. 당시 모습 재현에 국방부나 국가보훈처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우선 대구시 등 지자체라도 앞장서야 한다.



지국현 기자 jkh8760@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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