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기행<115>김현과 호랑이

발행일 2021-05-24 13:08:4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탑돌이 하다 눈맞은 호랑이 처녀, 목숨으로 김현에게 은혜 베풀어



신라시대 김현과 호랑이 처녀의 사랑 이야기가 삼국유사 효선편에 전설로 전해오는 황성공원의 호원사지 석탑 옥개석.


삼국유사 효선편에 김현이라는 총각과 처녀로 변신한 호랑이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신라시대 젊은이들의 사랑에 대한 풍속도를 은연중에 그리고 있어 당시의 사랑에 대해 어렴풋 짐작하게 한다.

또 부부간의 정과 의리를 통한 사회적 개념을 이해하게 하고, 효도하며 사회적 선의를 베푸는 방법과 정서를 은근히 시사한다.

여기에서는 또 불교를 통해 은혜에 대해 보은하는 정성을 표현하고, 죽어서도 극락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사회적 선을 불교와 접목해 실현하게 하는 덕목으로 소개한다.

호랑이를 사람을 잡아먹는 포악하고 단순한 짐승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사람으로 변해 선행을 실천하는 친 인간적이면서도 상당한 능력을 가진 절대적인 존재로 그려 경외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개념을 느끼게 한다.

착한 백성 김현과 의리파 호랑이 처녀의 사랑을 노래한 설화를 통해 도덕과 절대적 믿음, 사랑에 대한 개념을 다시 정리해본다.

황성공원 호원사지에 남아 있는 장대석.


◆삼국유사: 김현이 호랑이에 의해 감동되다

신라 풍속에 해마다 2월이 되면 초여드렛날부터 보름까지 서울의 남자와 여자들이 다퉈 흥륜사의 전각과 탑을 돌며 복을 비는 모임을 행했다.

원성왕 대에 김현이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다. 그는 밤이 깊도록 홀로 쉬지 않고 탑돌이를 했는데 한 처녀도 염불을 하면서 따라 돌다가 서로 마음이 맞아 눈길을 주고 받았다.

탑돌이가 끝나자 으슥한 곳으로 처녀를 데리고 가 정을 통했다.

처녀가 돌아가려 하자 김현이 따라 나서니 처녀는 사양하고 거절했으나 김현은 억지로 따라갔다.

서산 기슭에 와서 한 초가집으로 들어가니 늙은 할머니가 “따라온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처녀가 그간의 사정을 다 이야기하니 할머니가 “비록 좋은 일이기는 하나 없었던 것만 못하다. 그러나 이미 저질러진 일이므로 말릴 수도 없구나. 은밀한 곳에 숨기기야 하겠지만 네 형제들이 나쁜 짓을 할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처녀는 김현을 이끌어 깊숙한 곳에 숨겼다. 얼마 후 범 세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들어오더니 사람과 같이 말하기를 “집에 누린내가 나는구나.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어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고 했다. 할머니와 처녀가 꾸짖으며 “너희 코가 썩었느냐? 무슨 미친 소리냐”고 나무랐다.

이때 하늘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리기를 “너희 놈들이 생물 해치기를 좋아함이 너무 심하니 마땅히 한 놈을 죽여 악행을 징계해야겠다”라고 하자 세 마리 짐승이 이를 듣고 모두 걱정하는 기색이었다.

처녀가 말하기를 “만약 세 분 오빠가 멀리 피해 스스로 자숙하신다면 제가 대신 그 벌을 받겠습니다”라 이야기하니 모두 기뻐하며 고개를 숙이고 꼬리를 늘어뜨리면서 달아나버렸다.

황성공원 호원사지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면 우뚝 서 있는 김유신 장군동상.


처녀가 들어와 김현에게 “처음에 저는 낭군이 저의 족속에게 욕스럽게 오시는 것이 부끄러워 사양하고 거절했으나 이제는 더 감출 것이 없으니 감히 속에 품은 마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또 천첩이 낭군과 비록 같은 종족은 아니지만 하루 저녁의 즐거움을 함께했으니 그 의리가 부부의 정만큼 소중한 것입니다”고 했다.

또 “세 오빠의 악행을 하늘이 미워하니 가족의 재앙을 제가 지려고 합니다만 다른 사람의 손에 죽는 것이 어찌 낭군의 칼날에 죽어 은덕을 갚는 것만 하겠습니까? 제가 내일 저자에 들어가 심하게 사람을 해치면 사람들이 저를 어찌할 수 없으므로 대왕께서 반드시 높은 벼슬을 걸고 저를 잡을 사람을 모집할 것입니다. 당신은 겁내지 말고 저를 쫓아 성의 북쪽 숲 속까지 오시면 제가 거기서 기다리겠습니다”고 말했다.

김현이 “사람과 사람의 사귐은 떳떳한 인륜의 이치이지만 다른 류와의 사귐은 대체로 떳떳한 일이 아닙니다. 일이 이렇게 무난하게 된 것만으로도 진실로 하늘이 준 다행함인데 어찌 차마 배필의 죽음을 팔아 요행으로 한때의 벼슬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고 답했다.

처녀가 “낭군님 그런 말씀하지 마오. 이제 저의 목숨이 짧은 것은 바로 하늘의 명령이며 또한 제 소원이기도 합니다. 낭군께는 경사요, 저희 족속의 복이며 나라 사람들의 기쁨입니다. 한 번 죽어 다섯가지 이득이 있게 되는 것이니 그것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저를 위해 절을 세우고 불도를 강론해 좋은 과보를 얻는데 도움이 돼 주신다면 낭군의 은혜 이보다 더 큰 것이 없을 것이옵니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그들은 서로 울면서 작별했다.

경주 황성공원 호원사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석재들.


다음날 과연 사나운 호랑이가 성안으로 들어와 매우 심하게 날뛰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원성왕이 이를 듣고 명을 내리기를 “호랑이를 잡는 자는 2급의 벼슬을 주겠다”라 했다. 김현이 대궐로 나아가 “소신이 호랑이를 잡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 하니 왕은 즉시 벼슬부터 먼저 주면서 그를 격려했다.

김현이 짧은 칼을 들고 숲 속으로 들어가자 호랑이가 낭자로 변해 반가이 웃으면서 “어젯밤에 낭군과 함께 정으로 하나 된 일을 절대로 가벼이 여기지 마소서. 오늘 내 발톱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모두 흥륜사의 장을 바르고 그 절의 나발 소리를 들으면 나을 것이옵니다”고 했다.

이어 즉시 김현이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스스로 목을 찔러 넘어지니 곧 호랑이로 변했다. 김현이 숲에서 나가 거짓으로 말하기를 “지금 여기서 호랑이를 쉽게 잡았다”고 소리쳤다.

그리고 그 사유는 숨긴 채 말하지 않고 다만 그가 일러 준 대로 치료했더니 상처가 다 나았다. 지금도 세간에서는 이 방법을 쓰고 있다.

김현이 벼슬길에 오르자 서천가에 절을 세우고 호원사라 했으며 항상 범망경을 강론해 호랑이의 저승길을 인도함으로써 호랑이가 제 몸을 희생해 자기를 성공하게 한 은혜에 보답했다.

신라시대 고성숲이라 불리며 사냥터로 전해지는 호원사지가 있는 황성공원의 숲.


김현이 죽음을 앞두고 지난날의 신이함에 깊이 감동해 붓을 들어 그 전기를 써 완성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로 인해 글 이름을 ‘논호림’이라 했는데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

김현의 호랑이는 마지못해 사람을 상하게 했으나 좋은 처방을 일러줘 사람들을 구했다. 짐승도 어질기가 저와 같은데 지금 사람으로서 짐승만도 못한 자가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이 사건의 처음과 끝을 자세히 살펴보면 절을 돌 때 사람을 감동시켰고, 하늘이 악을 징벌하겠다고 외치자 자신이 대신 벌을 받겠다 했다. 용한 처방을 주어 사람을 구했으며 절을 세우게 하고 불법의 계율을 강론하게 했다.

이는 짐승의 본질이 어진 탓에 그런 것뿐만이 아니라 대개 부처가 사물에 감응함이 여러 방면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현이 온 정성을 다해 탑을 돌자 이에 감응해 몰래 이로움을 주고자 한 것이다. 그 당시에 복을 받음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다음과 같이 찬미한다.

‘산골 집의 세 오라비 악행이 너무 많지만/ 고운 입에 한 번 맺은 백년가약 어이하리/ 겹쳐진 의로움에 만 번 죽음 가벼우니/ 숲 속에 몸 던져 낙화마냥 져갔구나.’

경주 황성공원에 조성한 녹색숲.


◆새로 쓰는 삼국유사: 김현과 호랑이

원성왕 때에 서라벌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에 김현이라는 건장한 청년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현명하여 글공부도 뛰어나고 활을 잘 쏠뿐 아니라 모든 무술에 능했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고 나무를 팔거나 사냥으로 잡은 짐승을 팔아 연명했다.

김현은 착하기도 하고 사리가 분명해 사람들의 시비를 가려주는 일에도 곧잘 나서 마을에서도 모두 칭찬하며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늦게까지 장가를 들지 못하고 혼자 살아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김현이 산속 깊숙이 들어가 나무를 베고 땀을 훔치고 있는데 호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걸어나와 그의 앞에서 입을 벌리고 앉아 눈을 껌뻑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경주 황성공원 호원사지 서북쪽에 조성된 비석림.


놀란 김현이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히 살펴보니 호랑이 어금니에 긴 가시가 돋아 있었다. 김현이 냉큼 다가가 팔을 걷고는 가시를 뽑아주었다.

그랬더니 호랑이가 큰 절을 하고는 김현을 북쪽 숲속 동굴로 안내했다. 동굴 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재질을 알 수 없는 활이 있었다. 김현이 그 활에 시위를 메겨 당기면 마음 먹은대로 백발백중이었다.

바로 그해 활을 잘쏘아 무과에 급제한 김현은 고구려와 인접한 성에 배치되어 전쟁을 하지 않고 성을 평화롭게 다스리는 성주가 됐다. 왕의 신임을 얻은 김현은 공주를 부인으로 얻어 행복한 삶을 이어갔다.

경주 황성공원 호원사지 동북쪽에 서 있는 황룡사9층목탑 모형탑.


김현은 호랑이의 덕을 잊지 않기 위해 황성숲에 절을 지어 매년 특별한 법회를 열어 호랑이의 복을 빌었으며, 호랑이의 용맹과 은혜에 대한 글을 책으로 엮어 사람들이 읽게 했다. 사람들은 그 절 이름을 호원사라 불렀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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