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석

기상청장

대부분의 사람들이 ‘측우기’는 알지만, ‘측우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측우대는 1442년(세종24년) 조선에서 강수량 측정을 위해 세계 최초로 제작한 측우기의 받침돌이다. 측우기는 기상관측을 하던 측기로서 가치가 있겠다고 생각되는 반면, 측우대는 단순한 받침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측우대 표면에는 제작된 연도와 조선시대의 강수량 제도의 역사가 새겨져 있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측우기의 존재를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유산이다. 지난해에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측우기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금영측우기’와 더불어 ‘대구 선화당 측우대’, ‘창덕궁 측우대’가 국보로 지정된 바 있다.

조선시대에는 강수량 외에도 다양한 기상관측이 이뤄졌다.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린 동궐도(국보249호)에는 측우기와 더불어 풍기대, 일영(日影)받침대, 소간의(小簡儀) 등이 묘사돼 있어 날씨와 시각, 계절을 체계적으로 관측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조선시대는 농본사회로서 이런 기상과 천체의 관측을 통해 가뭄과 홍수를 대비하고 농사의 기초자료로 활용해 백성들의 안전과 농업생산량 증대를 도모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기상관측은 자동화되고 더 다양한 기상요소에 대해서 관측을 하고 있다. 땅에서는 기온, 기압, 습도, 바람, 일조, 일사, 강수량, 증발량 등 다양한 기상요소를 자동화된 기상장비를 통해 1분 단위로 24시간동안 정밀하게 관측한다. 관측하는 지점도 세밀해져서 전국 624개 지점에서 자동관측 되고, 대구·경북에서만도 76개소에 달한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와 산림청, 농촌진흥청, 수자원공사 등에서 운영하는 기상관측장비까지 통합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아진다.

특히, 조선시대에 측우기·측우대의 규격을 동일하게 제작해 전국에 설치한 것처럼 현재도 표준화된 기상관측을 위해 ‘기상관측표준화법’을 제정해 기상관측규격을 통일시키고, 관측된 값이 관측 장소 주변의 날씨를 대표할 수 있도록 관측환경을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지난 4월18일부터는 정부와 지자체 등에서 기상관측 용도로 사용하는 기상측기에 대한 종합적인 성능검증체계인 ‘기상측기 형식승인제도’를 시행해 관측자료의 정확도를 높이고 국산 기상관측장비의 품질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날씨는 단순히 우리가 생활하는 지면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상공 10㎞ 이상까지, 그리고 바다 위와 다른 나라의 기상현상까지 입체적으로 파악해야 좀 더 실제 대기상태에 가깝게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바다 위에서도 기상관측부이를 띄워 해상에서의 날씨를 직접 관측하는 한편, 라디오존데, 기상레이더, 항공기관측, 천리안기상위성을 통한 원격관측에 이르기까지 빈틈없이 날씨를 파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렇게 관측된 기상자료는 현재의 날씨를 파악하는 것 자체로도 가치가 있으나, 통신망을 통해 전 세계의 기상자료가 공유되고 수치예보모델의 입력자료로 활용되고 기상예보로 재탄생된다.

날씨는 자연현상의 하나로 그 자료가 오래 축적되고, 통일된 규격으로 관측될수록 현상 자체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자료로서의 가치가 상승한다. 기상청은 지금 날씨가 어떤지 어디에 비가 얼마나 오는지를 파악하고, 내일모레의 날씨를 예보하는 것부터 미래 100년, 혹은 그 이상의 기후예측을 바탕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600여 년 전의 측우기부터 천리안 기상위성에 이르기까지 기상관측의 역사는 지금도 현재진행 중이다. 측우대가 단순한 받침대가 아닌 것처럼, 지금 기상청이 관측하고 기록하는 모든 것들이 내일과 미래의 날씨를 만들고 국민의 삶의 편의는 물론 위험기상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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