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마트료시카처럼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가정의 달이다. 오월에 접어드니 산으로 들로 부모를 찾아 나서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오랜만에 우리 식구도 때늦은 성묘를 하러 산에 오른다. 부모님 누워 계신 산소 언저리에 들어서니 에워싸고 있는 풍경이 참으로 아늑하고 평화롭다. 어디선가 향기가 진동한다. 코를 벌렁대며 돌아보니 하얀 찔레꽃이 바위 뒤에 피어나 산소 주변을 화사하게 물들인다. 진한 찔레꽃 향기에 그리움이 몰려든다. 땀내 젖은 엄마 품이 그립다.

눈 부신 햇살 아래서 찔레꽃은 “기다리고 있었어. 어서 와~!”하고 반가이 손짓하는 것 같다.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좋아하실 부모님이 안 계시자 오월이면 발길이 자꾸만 산으로 향한다. 바이러스가 아무리 기세로 꺾지 않아도, 미세먼지가 제아무리 하늘을 가려도 어머니 아버지 누워 계신 곳은 봄볕을 받아 아늑함 그 자체다. 차가운 눈발이 날려도 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산등성이가 병풍처럼 가리개 역할을 하고. 제 살기에 바빠 좀처럼 오지 않는 자식을 대신해 찔레꽃은 바위 뒤에 피어서 향기로 부모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었던 게다.

참 기막히게 향기 좋은 찔레꽃이 온 천지를 위로한다. 끝내 없어지지 않고 겨울 감기처럼 토착화 할 것 같은 코로나도 찔레꽃 향기를 맡아보고 향기에 취해 썩 물러나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무덤 위에 돋아난 잡초들도 색색의 꽃을 달고 있다. 손으로 뜯고 칼로 자르고 예초기를 돌리는 자식들이 오랜만에 자기 힘껏 부모님 이발 단장을 해드리는 데 열심이다. 뜯긴 풀에서도 향긋한 냄새가 풍긴다. 풀을 뜯다가 문득 생각한다. 풀들도 각자 제 나름의 꽃을 피우는 시기가 있지 않을까. 세상 모든 생명체, 미생물도 풀도 나무도 사람도 모두 제 나름의 꽃을 피울 한창때는 찾아 오리니.

비탈진 언덕배기에 붉은 황톳빛 찻집에 들어섰다. 부모님을 찾아뵙고 고향 땅 한 바퀴 돌아볼 때 자주 찾는 집이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창가에 마트료시카 인형이 놓여있다. 언젠가 러시아 공항을 지나는 길에 나도 어머니께 사다가 드렸던 기념품이 그곳에 있다니. 어머니는 그 인형이 너무 신기하고 예쁘다면서 주르르 내놓았다가 또 하나하나 차곡차곡 넣어서 하나로 단단히 합체된 완전체로 두고 빙글빙글 돌려가며 웃고 또 웃으며 바라봤다. 어머니 가시고 그 인형을 보면 자꾸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얼마 전에도 마트료시카 인형을 시장가에 늘어선 기념품점에서 보고는 아무 망설임 없이 덥석 집어 들었다. 마치 어머니를 본 듯이.

마트료시카는 나무로 만든 러시아의 전통 인형이다. 몸체 속에는 조금 작은 인형이 들어가 있고 이것이 몇 회를 반복해 들어가는 구조로 돼있다. 마트료시카는 러시아어 여자 이름인 마트료나(Матрёна)의 애칭으로 어머니를 뜻하는 어원 마쯔(Мать)와 작고 귀여움을 나타내는 접미사인 쉬까(ешка)의 결합이 된 것이니 ‘어머니 인형’이라는 뜻이다. 다산과 다복을 상징하고 부유함과 행운을 가져오는 인형이란다. 각각의 인형은 여성이 그려져 있는 것이 기본이지만, 대통령 등 유명인이 그려진 변형도 있다. 러시아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은 1890년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본에서 나온 기념품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1900년에 러시아 각지에서 여러 가지 마트료시카가 만들어지게 되면서 러시아의 민속 공예품과 선물로 알려지게 됐다.

생김새는 나무 오뚝이처럼 생겼고 기본형으로는 러시아 전통 두건을 쓴 소녀 그림이 그려져 있다. 큰 인형 안에 약 80% 크기의 작은 인형이 계속 들어 있어서 큰 인형을 열면 안에서 작은 게 튀어나오고 그걸 열면 또 안에서 더 작은 게 튀어나오고 열면 더 더 작은 게 튀어나오고 열면 더 더 더 작은 게 튀어나오는 식으로 인형 안에서 인형을 꺼내고 또 꺼낼 수 있다. 제일 안쪽의 것은 거의 손톱만 한 크기다. 일반적으로 5개 정도부터 시작하지만 대개 6개 이상 만들어진다고, 작은 인형들의 수가 많을수록 가격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원래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제품은 자작나무로 만들어지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인형 하나하나의 의상과 표정 그리고 배분에 들어가는 그림이 각자 모두 다르고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여유로운 자태로 의젓하게 버티며 자식들에게 향기로운 꽃으로 그리움을 전하는 찔레꽃처럼, 엄마 품이 무척이나 그리운 날엔 이 황토 찻집에 놓인 마트료시카를 바라보며 어머니를 비대면으로 만나 봐야겠다. 상상 속에서나마.

마트료시카처럼 우리들 안에도 부모와 그 부모, 그 윗대 부모님들의 유전자들이 겹겹이 쌓여 내려오지 않았으랴. ‘겹겹이 제일 단단해진 열매 같은 우리’ 로 말이다.

오월은 가정과 가족의 의미가 새롭게 느껴지는 달이다. 사랑과 이해로 뭉쳐서 날마다 웃음 지을 수 있기를, 늘 아늑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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