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 최재목

발행일 2021-05-03 15:15:2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쩌라고/ 너는 너대로 살았잖아/ 그런데 어쩌라고//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가/ 훨씬 좋잖아/ 그런데 왜 자꾸 나더러/ 너처럼 살라 하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한 번쯤 막 나가는 삶을/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치는 삶을/ 너는 너처럼/ 나는 나처럼 살자/ 그래도 된다고/ 그렇게 말해야 옳잖아//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 네 멱살을 잡으며/ 그렇게 말하고 싶다/ 너도 나처럼 그렇게 말해도 돼// 좋잖아/ 그게 좋잖아/ 한 대 때려 봐 그래도 돼/ 너는 너처럼/ 나는 나처럼 살 수 있다면/ 한 대 맞아도 돼/ 버림받아도 돼/ 어쩔래/ 그래 어쩌라고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 (21세기문화원, 2021)

자연스럽게 일상어로 툭 던진 말 속에 진리가 담겨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에 진리가 담겨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말은 솔직한 심정을 나타내는 무의식의 모습이긴 하겠지만 깨달음을 줄 정도로 가슴에 와 닿지는 않는다. 즉흥적인 말이 화두가 되고 인생을 통찰하는 의미 있는 빛과 소금이 되려면 인고의 세월을 거쳐 숙성되고 단련된 영혼의 자유로운 사색이 그 바탕에 깔려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시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는 범상치 않은 기막힌 대듦에 다름 아니다. 오랜 수련에서 나올 수 있는 자신감과 노련한 경륜에서 숨 탄 배짱 거기다 막다른 골목에서 내지르는 순발력 있는 재치가 버무려진 선문답이다. 시인의 대듦은 자신에게 던지는 화두이자 지나온 인생을 농축시킨 엑기스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정도의 내공이 실린 시는 강호의 고수가 아니면 감당하기 힘들다.

어떤 분야든지 입문 후 초창기엔 힘든 세월을 보낸다. 청소와 물 긷기, 부엌일은 기본이고 훈련과정도 고되고 험하다. 반면, 스승은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한다. 그 모습을 보는 눈은 불만과 오만으로 차오르게 마련이다. 때 이른 시기에 스승에게 대드는 기회를 잡아 분수를 모르고 건방을 떨다간 된통 당하고 만다. 그건 한 계단 더 딛고 올라서는 발판으로 기능한다. 하산해도 좋은 경지에 도달할 때에야 비로소 정상의 여유를 터득하는 법이다. 그러면 굳이 산에 남을 필요가 없다. 어디에 머물러도 편안하다. 내키는 대로 해도 무리가 없다.

마음이 성숙하지 못할 땐 스스로 자제하거나 타의에 의해 통제받는다. 윗사람의 뜻을 따르고 옆 사람의 눈치를 보며 아랫사람의 분위기를 살핀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스캔하고 다수 의견에 동조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예각을 숨긴다. 숨을 죽인 채 발뒤꿈치를 들고 조심조심 걷는다. 판이 깨질까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얼음판을 걷듯 몸을 가볍게 한다. 그런 과정에서 경공이 몸에 붙는다. 허나 고수는 거리낌이 없이 내달려도 만사 무탈하다.

시인은 이제 ‘막 나가는 삶을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치는 삶을’ 살아도 한 점 어긋남이 없다. 때리면 맞고 버려짐도 감수하겠다는 각오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맞을 일은 없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사는 게 본질이다. 이제 시인은 혜안을 가지고 세상을 본다. 예상을 초월한 시인의 일갈이 사고의 틀을 깬다. 그대는 그렇게 걸었고 나는 나대로 걸었다. 어쩔래. 아무도 대들 리 없는 기막힌 대듦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앞으로도 그리 살 것이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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