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 현장을 가다 (86) 가람솔(항아초)

발행일 2021-05-03 20:13:1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면역력이 강조되는 시기에 전통 발효식초로 면역력 높여

식초는 기다림과 불편함의 미학, 면역력 쑥쑥!!

조미료를 넘어서 건강식품으로 나가는 전통발효식초

항아리에서 숙성 중인 식초를 살펴보고 있는 정다해 대표.
14세기 흑사병이 만연하면서 유럽 전역이 초토화됐다.

1억 명 이상이 사망한 것이다.

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찾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도 흑사병으로 사망한 주택에 침입해 금품을 탈취한 4명의 도둑이 있었다.

병균이 득실거릴 것 같은 집들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거리를 활보했다.

결국 체포돼 법정에 섰다.

그런데 재판장의 관심은 죄의 경중이 아니었다.

‘어떻게 흑사병에 감염되지 않고 도둑질을 하면서 돌아다닐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흑사병을 피해간 방법이 무엇이냐’는 추궁에 도둑들은 ‘죄를 묻지 않고 자유를 주면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응수했다.

결국 ‘폴리바게닝(수사에 협조하고 죄를 감면받는 제도)’이 성립됐고, 도둑들은 예방법을 공개했다.

‘수시로 식초를 마시고, 식초로 씻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식초를 만드는 레시피도 공개했다.

이를 계기로 중세의 성직자나 의사들도 이 식초면역법을 사용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도둑들이 공개한 레시피에 따라 만들어진 식초는 ‘4명의 도둑식초’라는 브랜드로 아직도 남아 있다.

식초는 예로부터 면역력을 높이는 식품인 동시에 살균효과가 높아 소독약처럼 쓰였다.

오늘날에도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의성에서 ‘재래식 정치배양법’으로 자연발효 식초를 만드는 ‘가람솔’의 정다해(58·여)대표를 만났다. 정 대표는 ‘항아초’라는 브랜드로 사과식초와 솔잎식초 등 다양한 종류의 식초를 만든다.

정다해 대표가 가람솔에서 생산한 사과식초를 들어 보이고 있다.
◆맛집에서 식초로 전환

정 대표는 인근 도시에서 찜요리 전문점을 30년간 운영했었다.

맛집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언제나 손님들이 북적였다.

한식과 중식, 복어요리 자격증까지 가지고 있다.

식당을 운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된장과 김치, 전통주 등 발효식품을 취급하게 되고 발효공부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발효식품의 우수성을 알게 됐다.

일본견학을 하면서 식초를 만났고, 그 효능에 빠져들었다.

식당 마당에 30개의 항아리를 들여놓고 식초를 만들기 시작했다.

전문지식이 없이 혼자서 하는 공부는 쉽지 않았다.

일반적인 맛을 낼 수는 있었으나 명품식초는 나오지 않았다.

식초에 대한 이론도 모르는 상태에서 의욕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혼자서 기술을 터득하는 데에는 한계를 느끼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6개월 동안 지역 대학의 발효공학 전문교수 연구실을 드나들면서 식초에 대한 전문교육을 받았다.

‘모든 식품은 품질의 균일성 유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도 이때 배웠다.

식당 마당에 마련된 항아리로 3년 간 실습과정도 거쳤다.

2008년 고향인 의성으로 자리를 옮겨 ‘항아초’라는 브랜드로 전통발효식초를 만든다. 지금은 사위인 최오습(45) 부장도 합류했다.

최 부장은 홍보와 판매를 담당한다.

가람솔에서 생산하는 항초초 제품들. 사과식초, 솔잎식초, 현미식초 등.
◆항아리는 나의 보물

가람솔에는 600개의 정통항아리가 있다.

200ℓ가 들어가는 대형이다.

모두가 잿물로 구운 정통항아리다.

일명 숨 쉬는 항아리다.

표면에 있는 작은 숨구멍을 통해 공기가 드나들어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숙성도 돕는다.

청송과 호남지방의 옹기장(甕器匠)이 만든 것들이다.

숨 쉬는 항아리에 식초를 담고, 자연발효를 통하여 좋은 식초를 만들기 위해 선택한 항아리다.

식초를 만들면서 지인들이 대대로 보관해 오던 항아리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 항아리에는 감사한 마음과 사랑만 담아둔다. 식초를 담지는 않는다.

좋은 항아리지만 오랜 시간 동안 담아 두었던 된장이나 간장 등의 성분이 배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항아리는 사용하기 전에 2차에 걸쳐 물 세척을 하고 물을 담아서 충분히 우려낸다.

고온의 스팀세척을 통해 멸균작업도 거친다. 초산균 이외의 다른 잡균들로부터 오염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멸균작업을 마치면 식초를 담아서 1년 이상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숙성과정을 거치면 완성된다. 이것이 정치배양법으로 만든 자연발효식초다.

발효실에서 숙성 중인 항아초 항아리.
◆사과식초와 솔잎식초

식초를 만드는 기본과정은 대부분 비슷하다.

쌀로 술을 빚은 후에 초산균을 접종해 초산발효과정을 거치면 완성된다.

정 대표는 사과식초와 솔잎식초, 생강식초 등 다양한 종류의 식초를 만들지만 쌀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현미식초 이외에는 쌀을 사용하지 않는다.

사과식초와 솔잎식초가 가장 생산량이 많다.

사과식초는 지역에서 GAP 인증을 받은 농가의 사과만을 구매해 원료로 사용한다.

초미세입자로 분쇄해 착즙한 사과즙을 일주일간 알콜발효를 거친 후에 항아리에서 초산발효가 시작된다.

3개월 정도에 식초가 완성되는 편이다.

그 후 1년 정도 숨 쉬는 항아리에서 숙성과정을 거친다.

항아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상태로 정치배양을 거치면 자연발효 사과식초가 된다.

사과는 착즙량이 65%에 이르고 당(糖)함량이 충분하기 때문에 당을 첨가하지 않고도 식초를 만들 수 있다.

솔잎식초는 이른 봄철에 송순(솔순)과 솔잎을 채취해 만든다.

주로 간벌과 가지치기를 하는 청정지역에서 관계기관의 허가를 받아서 채취한다.

당분이 없기 때문에 당을 첨가해서 알콜발효를 하고 초산발효과정을 거치면 솔잎식초가 완성된다.

항아리에서 숙성시킨 자연발효식초라 은은한 사과향과 솔향이 배어있고, 맛이 부드럽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과식초는 2012년에 특허(제10-1137833호)를 받았다.

◆청결 또 청결

정 대표가 좋은 원료 못지않게 신경을 쓰는 것은 청결이다.

청결한 환경에서 깨끗한 식초를 만들겠다는 생각에서다.

모든 원료는 지역 농산물로 사용한다.

품질의 우수성뿐만이 아니라 생산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재배이력을 훤하게 알고 있다.

그 만큼 신뢰할 수 있는 농산물이라는 의미다.

발효탱크를 비롯한 모든 시설은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로 만들었다.

한번 사용한 항아리는 2차에 걸친 세척과 물 우림, 스팀세척을 기본으로 한다.

잡균의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1년 이상 정치배양을 하기 때문에 항아리 외면은 정기적으로 닦아서 청결한 상태를 유지한다.

식초는 해썹 의무적용 대상이 아니지만 2014년에 해썹인증을 받았다.

식초제조 전 과정을 청결하게 관리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전통 발효식초를 만들면서 해썹인증을 받은 것은 가람솔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식초를 담는 용기를 유리병으로 고집하는 것도 보다 위생적인 관리를 하기 위한 것이다.

비싼 유리병은 경영비 상승요인이 있지만 기꺼이 감수한다.

발효실을 비롯한 모든 시설에 외부인을 철저히 제한한다.

꼭 필요한 경우에는 위생복을 착용하고 철저한 소독과정을 거쳐야만 출입할 수 있다.

정다해 대표가 보물단지처럼 관리하는 정통항아리. 옹기명인이 만든 항아리다.
◆ 제품의 다양화와 건강식품화

정 대표는 “힘은 많이 들지만 전통발효식초를 계속 만들겠다”면서도 “무조건적으로 전통기법에 얽매이기 보다는 전통과 현대적 기술이 융합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항아리를 제외한 일부 시설을 현대화해 노동력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시설은 개선하되 우수한 천연재료와 자연발효기술은 지킨다는 생각이다.

규모화를 통해 가동율을 높임으로써 경영비도 줄여 나간다.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제품의 다양하도 추구한다.

보리수식초와 파인애플식초, 바나나식초, 커피식초까지 만들어 소비자의 입맛을 자극할 계획이다.

태양인과 태음인 등 4가지로 구분하는 사상체질을 활용하는 개인별 맞춤형식초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제마 선생이 창안한 사상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식초를 조미료를 넘어선 건강식품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

이동률 leedr@idaegu.com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