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상을 심도 깊고 생생하게 다룬 서적들 소개||맨박스(MANBOX), 등불은 그 자체

사회 현상을 심도 있고 생생하게 다룬 신간들이 서점가에 선보인다.

지난해 코로나19가 정통으로 휩쓸고 간 대구의 긴박했던 상황부터 이 시대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다룬 이야기까지.

또 잃어버린 열정, 무모함 등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고 소중함을 찾을 수 있는 책도 소개한다.

◆맨박스(MANBOX)

토니 포터 지음/한빛비즈/232쪽/1만5천 원

이 책은 ‘남자다움’을 의심한다.

책의 저자는 남자를 둘러싼 고정관념의 틀을 ‘맨박스’로 규정하고 이를 깨부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성이 남성에게 말하는 가장 단도직입적인 페미니즘 서적이라고 자부한다.

맨박스를 불편하게 여기는 남자도 있겠지만, 저자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 안에서 결속감과 안도감을 얻고 있다고 말한다.

남성의 삶 깊숙이 스며든 맨박스는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그 문제들은 남자들의 삶을 지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곧장 여성의 삶 속으로 파고들어서다.

책은 오늘날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이 전염병 만큼이나 흔해진 원인이 한 개인의 일탈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평범한 남성들의 침묵을 경계한다.

침묵은 남성들 간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공모 행위며, 평범한 남성들의 침묵은 여성을 해치는 폭력적인 행동이 마치 늘 있는 일처럼 비춰지게 한다.

착한 남자의 침묵은 폭력의 승인이나 마찬가지이며 여성 폭력 문제는 모든 남성 개개인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배우 김윤석, 가수 RM(방탄소년단), 배우 하정우 등 다양한 세대의 ‘셀럽’들이 자발적으로 이 책을 찾아 읽었다.

출간 전 300건도 되지 않았던 ‘맨박스’ 검색 결과는 현재 2천500만 건에 이른다.

책은 혐오 감정으로 편을 가르고 정신없이 싸우느라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이성과 싸워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하는 방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이 책은 모든 남성이 여성 폭력 문제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의무감을 바탕으로 솔직하고 진솔하게 그리고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각오로 싸워주길 부탁하고 있다.

남성들이 경직된 성역할에서 벗어나야만 여성들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저자는 모든 성인 남성과 남자아이가 상냥하고 신사적이며 모든 여성이 안전하고 소중히 여겨지는 그런 세상을 원한다고 말하며 변화를 시작할 때라고 조언한다.

◆등불은 그 자체로 빛난다

손정학 지음/학이사/256쪽/1만4천 원

이 책은 대한민국에서도 대구, 그 중심에 있던 남구에서 코로나19와 벌인 사투를 기록한 일기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와 1년 동안 함께한 상황에서 처음으로 코로나가 확산되던 시기의 기록을 읽는 일은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여전히 코로나는 끝이 나지 않았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노력하고 이겨내고자 희망을 꿈꾼다.

희망은 등불이며, 등불은 그 자체로 있을 때 더 크게 빛난다.

책은 긴급한 상황을 생생히 전달하면서 결국 등불처럼 모두가 가져야할 희망을 안내하고 제시한다.

책에서는 코로나19로 급박했던 보건소 상황과 묵묵히 현장을 지킨 의료진, 군인, 자원봉사자, 특히 남구청 공무원들의 이야기 등 당시의 생생한 현장을 전달한다.

책의 저자 손정학은 대구 남구보건소에서 보건행정과장으로 일하며 당시 긴박했던 6개월 동안의 상황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지난해 연초부터 설 연휴를 대비해 신속 대응반을 편성했고, 지난해 1월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하고부터는 24시간 비상방역체계가 가동됐다.

하지만 국내·외 감염증 확진자는 점점 늘어났고 위기단계는 ‘주의’에서 ‘경계’로 강화됐으며 시시때때로 의심환자가 접수돼 상황은 숨 가쁘게 흘러갔다.

또 지난해 2월 중순 대구에서 비상사태가 벌어지면서 보건소의 일반업무는 전면 중단되고 코로나 대응을 위한 비상근무가 시작됐다.

확진자 대량 발생에 대비한 환자 수송 준비, 행사와 집회 전면 중단 요청을 하는 동시에 빗발치는 전화를 소화하기 위한 전화 증설과 직원 지원요청까지 긴급 상황에 모두가 주말 없이 뛰어다녔다.

돌발사건도 끊임없이 발생했다.

확산 방지를 위해 힘쓰는 동안 가출청소년 자가격리 문제부터 지침 변경에 따른 혼란, 반려동물 처리 문제, 전화민원, 완치된 확진자와 자가격리 대상 가족 간 갈등, 자가격리 불이행 고발 등 크고 작은 소동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책의 상세한 기록은 앞으로 코로나19를 대하며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계속 들고 가야 할지 생각하게 만든다.

◆나의 스무 살 거울엔 잃어버린 네가 산다

rnr헌 지음/주의것/216쪽/1만3천500원

이 책은 스무 살의 추억을 초청해 오늘의 삶을 소중히 느끼도록 응원하는 수필집이다.

책에서는 대학입학이라는 하나의 길 앞에서 전혀 다른 자기만의 길을 선택한 저자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등학교 시기부터 스무 살을 통과, 뮤지션의 꿈을 찾아 떠나고 방황하는 이십 대 초중반까지를 그 시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책은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독특한 형식으로 펼쳐진다.

책의 저자는 과거 꼴찌의 도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하는 이유, 계속되는 장벽 앞에서의 자세, 스무 살을 떠나보낸 뒤에도 꿈을 꾸며 사는 길 등을 주제로 27편의 글을 올린다.

저자의 기억에 있는 당시의 치열했던 경험들을 틈틈이 인터넷을 통해 메모한 것이다. 올린 인터넷 게시판에는 친구들과 교사들의 위로와 격려의 글이 줄줄이 달렸다.

20년이 흐르고 마흔에 이른 저자는 우연히 스무 해 전의 그 글들을 발견한다. 글을 통해 첫 번째 스물과 두 번째 스물의 재회가 이뤄진다.

그 결과 저자는 오늘의 가장 소중함을 깨닫는다.

스무 살을 떠나보낸 뒤 우리는 언제 스무 살이었느냐는 듯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갔지만 스무 살 때의 우리의 얼굴에는 희망과 용기가 섞인 빛이 있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스물을 살아오며 잃어버렸던 열정과 순수가 첫 번째 스물에서는 풍부했음을 발견한다.

저자는 ‘나의 스무 살’을 재회한 뒤 두 가지 선물을 얻게 된다.

하나는 지금의 나다. 내가 잃어버린 열정, 무모함 등을 가지고 있던 나와의 만남인 것이다.

또 하나는 어른 세계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축하와 축복의 관계가 스무 살 전후로 풍부했다는 사실의 발견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발견이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어제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의 오늘을 가장 소중한 날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고 조언한다.

저자는 유럽 자전거 여행기인 ‘젊은 날의 발견’, 아내와 남녀 관점에서 각각 집필한 ‘결혼이란 무엇일까’, 30대의 사랑과 결혼을 다룬 ‘30대가 30대에게 쓰는 편지’ 등을 펴냈다.



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