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게임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승자다

발행일 2021-04-06 10:09:54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박운석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195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그리피스 천문대 인근의 절벽 위. 출발 신호와 함께 두 대의 자동차가 절벽을 향해 급출발을 한다. 차에서 먼저 뛰어내리는 사람이 지는 ‘치킨 런’ 게임이다. 주인공은 차문을 열고 뛰어내리지만 상대는 손잡이에 옷이 걸리는 바람에 차와 함께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 제임스 딘(James Dean) 주연의 1955년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의 한 장면이다.

비슷한 내용의 게임이지만 종종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장면이 있다. 두 대의 자동차가 신호와 함께 서로를 향해 질주를 한다. 핸들을 꺾지 않아 충돌하면 둘 다 사망할 수 있는 위험한 게임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핸들을 꺾어 충돌을 피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으나 겁쟁이를 뜻하는 치킨(chicken)으로 놀림을 받을 수밖에 없다. 먼저 피하는 쪽이 패하는 치킨게임(Chicken Game)이다.

원래 치킨게임은 20세기 후반 미국과 소련의 극단적인 군비경쟁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양쪽 모두 파국에 치달을 수 있는 극단적인 경쟁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어제로 마감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유세전이 흡사 치킨게임을 보는 듯했다. 선거 때만 되면 그렇듯 이번 선거도 정책은 온데간데 없고 상대를 향한 막말과 비난만 난무했다. 마주 보며 돌진하는 양상 때문에 이번 선거 역시 어느 쪽이 이기든 후유증은 오래갈 듯하다. 서로 정당한 파트너로 상대를 보는 게 아니라 깔아뭉개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사실 그동안 수많은 치킨게임을 지켜봐왔다. 극적인 효과는 연출했지만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오세훈-안철수 후보의 정치인생을 건 양보없는 대결도 치킨게임으로 묘사됐다.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파국으로 치닫는 치킨게임이었다. 지난해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등의 의료정책을 두고는 정부와 전공의 양자가 강대강 대치로 치킨게임을 벌이기도 했다.

치킨게임은 국가 간에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무역과 통상, 기술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이 대표적이다. 충돌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전 세계 경기 침체와 관련되는 치킨게임이다. 한국과 일본 간의 갈등 역시 마주 보고 돌진하는 자동차처럼 양보 없는 치킨게임 양상이다. 이 갈등이 오래 갈수록 한국은 물론 일본도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한발씩 양보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하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

치킨게임이라면 진보와 보수의 극한 대립이라는 형태로 지겹도록 봐오던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보듯 마주보고 질주하는데도 양쪽 모두 핸들을 꺾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핸들을 고정해두었으니 네가 알아서 피하라는 투다. 때로는 핸들을 뽑아 던져버리는 무모한 방법을 쓰며 네가 피하든 말든 알아서 하라며 협박하기도 한다. ‘모 아니면 도’를 외치며 기어이 100%의 승리만을 꿈꾼다. 이러면 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된다.

공멸을 피하기 위해선 정면충돌 이전에 치킨게임을 끝내는 게 정답이다. 하지만 어떻게?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양쪽 모두 만족할 만한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법은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다. 나는 피할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으니 상대에게 네가 핸들을 꺾고 네가 겁쟁이로 놀림을 받으라고 강요해선 안전하게 게임을 끝낼 수 없다.

양쪽 모두에게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양보할 수 있는 명분을 주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 신호와 함께 둘 다 동시에 핸들을 꺾게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 출발 전에 이미 핸들을 쇠사슬로 단단히 고정시켜 이 방법마저 쓸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충돌하더라도 결코 양보하지 않겠다는 모양새다. 차라리 심각한 부상을 입더라도 맞부딪치고 말겠다는 뜻이다. 중간에 완충지대를 만들려 애쓰는 국민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외면하면서다. 애먼 국민들만 양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걸 왜 모르는지. 공멸의 길로 질주하는 치킨게임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승자라는 사실을 왜 잊어버리고 있는지.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보면서 괜히 한숨만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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